철새 주요 도래지인 철원 양지리
축사, 농업시설로 분류 쉽게 허가
2년새 19곳 생겨 두루미 87% 감소
주민들 “철새 마을 무색” 설립 반대
‘두루미의 고장’이라 불리는 강원 철원군은 멸종위기 야생동물 Ⅰ급 조류인 두루미의 최대 월동지다. 철원 비무장지대(DMZ) 철새 도래지는 올해 환경부로부터 생태관광지로 지정됐고, 이달 초엔 경기 고양시, 전남 순천시 그리고 국제두루미재단과 두루미 보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다.
하지만 철원군 내에서도 대표적인 겨울 철새 도래지로 두루미가 많이 찾는 지역인 동송읍 양지리는 요즘 두루미 감소에 신음을 하고 있다. 철원군이 이 지역에 우후죽순 격으로 축사 허가를 내주면서, 두루미를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이다.
17일 철원군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동송읍 양지리에만 19곳의 축사 허가가 났다. 우사 2곳, 계사 11곳(메추리 1곳 포함), 돈사 6곳이다. 이중 12곳의 축사는 이미 들어섰고, 7곳은 공사가 진행 중이거나 공사를 앞두고 있다. 특히 절반에 달하는 계사의 경우 대형 육계 브랜드로부터 위탁을 받아 육계를 키우는 농가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또 양지리 주민들이 철원군에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철원군은 이 기간 가축분뇨 배출시설을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소규모 축사 20곳에 대해서도 허가를 내줬다. 2년 사이에 총 39곳의 축사 허가가 난 것이다.
축사가 들어서면서 이곳을 찾는 두루미의 개체 수는 크게 감소했다. 국립생태원 환경영향팀이 양지리 축사 건립 전후로 두루미 개체 수룰 비교한 결과 2013~2015년 217마리던 재두루미는 2016~2018년 27마리로 약 87%가 감소했다. 유승화 국립생태원 연구원은 “철원 지역에 도래하는 재두루미 개체 수가 해당 기간 2배 이상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이 지역 재두루미 감소는 축사 건립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철새 도래지역임에도 이처럼 축사가 들어설 수 있는 건 별다른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2012년 군부대 초소 북상으로 민간인출입통제구역에서 제외된 이후 농지로 활용됐는데, 축사는 농업시설로 분류돼 쉽게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철원군 한 관계자는 “양지리는 경지정리, 농업용수개발 등 농업생산기반시설이 정비되어 있는 우량 농지인데다 길도 잘 닦여 있어 축사를 운영하기 좋은 조건이라 신청이 몰린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들도 잇단 축사 설립에 적극 반발하고 있다. 정희섭 양지리 이장은 “악취 등 주민들의 불편도 견디기 힘들지만 무엇보다 철새와 공존하는 마을이라는 이미지가 무색하게 두루미 서식지가 파괴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여론에 떠밀린 철원군이 여러 조치를 내놓기는 했지만 이 또한 별반 효과를 보지 못했다. 철원군은 지난해 4월 우량 농지에는 돼지, 개, 산란계의 축사시설을 설치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철원군 개발행위 허가 운영지침’을 발표했다. 양지리는 대부분 우량 농지라 축사 허가를 막을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악취가 덜하다는 이유로 지침에 제외된 육계와 소 농장의 허가가 이어졌다. 지난해 10월에는 ‘철원군 가축사육에 관한 조례’를 개정했지만 주거밀집지역으로부터의 제한거리를 강화하는데 그쳤다.
뒷북에다 경미한 조치에 양지리가 ‘두루미 월동지’로서의 입지를 만회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미 39곳의 축사가 허가가 난 데다 철원군은 지침이나 조례 강화 이전 사업을 추진했던 양돈농가들로부터 5건 이상의 행정소송을 당한 상황이라 결과에 따라 추가로 축사 허가가 날 수도 있는 처지다. 김수호 한국조류보호협회 철원군지회 사무국장은 “외지인 토지매입 제한 등을 조례에 명시해서 철새 도래지에 더 이상 축사가 들어서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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