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단독] “조현민보다 더했다” 유명 콘텐츠 업체 대표 ‘갑질’ 논란
알림

[단독] “조현민보다 더했다” 유명 콘텐츠 업체 대표 ‘갑질’ 논란

입력
2018.04.20 16:13
0 0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평범함을 특별함으로. 미치세요. 하고 싶은 것에. 당신을 응원합니다”

페이스북 구독자 110만명을 보유한 유명 콘텐츠 제작업체 ‘셀레브(Sellev)’의 회사 소개 문구다. 10명 안팎의 직원이 근무하는 셀레브는 2016년 설립된 스타트업이다. 주력 콘텐츠는 유명인사 인터뷰 영상이다. 요란한 편집이나 컴퓨터 효과 없이 정직하다 못해 단순한 내용 구성과, 화면 절반 가까이를 잡아먹는 자막이 셀레브 영상의 트레이드 마크다.

셀레브의 콘텐츠에 열광하는 층은 10, 20대다. 콘텐츠에 희망, 꿈, 열정 등이 담겼기 때문이다. “영상을 보면서 많은 걸 느끼고 배운다”, “도전에 대한 두려움은 단순한 감정이고 나아가야 한다는 걸 느꼈다.” 셀레브의 영상을 본 네티즌들이 페북에 남긴 평가다. 하지만 영상을 통해 강조됐던 ‘긍정의 메시지’와 달리 셀레브 직원들은 임상훈 대표의 ‘갑질’로 고통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8일 오후 서울 강남에서 만난 셀레브 전 직원 김영주(31)씨 입을 통해서다. 임 대표의 행동은 최근 ‘갑질’ 논란으로 여론의 질타를 맞고 있는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는 주장이다.

“임 대표는 ‘미친개’라 불리는 걸 자랑스러워 했다”

김씨는 지난해 1월부터 5월까지 셀레브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근무했다. 간부급이었고, 타사에 비해 대우도 나쁘지 않았다. 콘텐츠 업계의 베테랑이었던 김씨에게 먼저 셀레브가 입사 제의를 했다. 김씨도 임 대표에게 배울 게 많다고 생각했다. 임 대표는 회사 설립 2년 만에 국내 유명 애니메이션 제작업체의 투자를 받을 만큼 콘텐츠에 대한 ‘동물적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김씨는 이날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임 대표가 가진 능력은 확실히 대단하다. 그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임 대표는 사내에서 이른바 ‘미친 개’로 통했다. 일상적인 욕설, 폭언, 고성 때문이다. 김씨는 “여직원들은 거의 매일 울 수밖에 없었다”며 “(임 대표가) 작은 회의실로 여직원을 불러 약 15분 동안 ‘네가 회사를 위해 뭘 했느냐’고 소리지르면 무슨 대답을 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김씨는 특히 임 대표가 사내에서 자신의 별명이 ‘미친 개’로 통하는 걸 자랑스러워 했다고 말했다. 그는 “회의실에서 임 대표가 내게 종이를 던지며 ‘나 미친 개인 거 알아, 몰라?’라고 하던 걸 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셀레브의 공식 출근시간은 오전 11시. 하지만 김씨와 같은 간부급 직원들에겐 큰 의미가 없었다. 임 대표는 밤 11시부터 새벽 3시까지 팀장급 직원들과 ‘밤샘 회의’를 하거나 새벽 2시에 팀장들을 소집하기도 했다. 새벽에 갑자기 자신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종종 직원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김씨는 “임 대표가 직원들과 SNS 친구를 맺고, 혹시 경쟁사의 콘텐츠에 직원들이 ‘좋아요’ 등을 누른 사실을 알면 이를 회의 때 언급하며 ‘그 회사로 가라’고 망신을 줬다”고 말했다.

김영주씨가 페이스북에 임 대표의 갑질에 대해 올린 글. 페이스북 캡처
김영주씨가 페이스북에 임 대표의 갑질에 대해 올린 글. 페이스북 캡처

회식은 공포의 시간…여직원과 룸살롱 가기도

김씨가 회사를 그만둔 결정적 이유는 폭언도, 욕설도, 밤샘 회의도 아니었다. 바로 ‘회식’ 때문이었다. 김씨는 회식을 “모두가 두려워하는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몸 상태, 개인 사정과 관계 없이 회식이 시작되면 기본 소주 3병을 비워야 자리를 뜰 수 있었다. 실제 김씨는 신장이 좋지 않지만 회식 때면 꾸역꾸역 입으로 술을 밀어 넣어야만 했다. “임 대표가 주는 술을 거부하는 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김씨는 설명했다. 술에 취할수록 임 대표의 폭언과 거친 행동은 강도가 높아졌다. 김씨는 술자리에서 임 대표가 던진 얼음에 맞아 피를 흘린 남자 직원도 있었다고 했다. 임 대표가 “분위기 좀 띄워보라”고 했는데, 이 직원이 거절하자 홧김에 얼굴에 얼음을 집어 던진 것이었다.

회식은 1주일에 1,2차례 열렸다. 임 대표는 2,3차 자리로 여성 접대부를 부를 수 있는 룸살롱식 술집을 선호했다. 술집에 가면 임 대표는 성별에 상관 없이 여성을 불러 옆자리에 앉히게 했다. 그러다 보니 여성 직원이 옆자리에 앉힐 여성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김씨는 “여자를 부를 수 있는 술집에 여자 직원을 데려간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모욕적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런 회식 방식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 20대 남성 직원도 있었다.

결국 김씨는 2017년 5월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퇴사했다.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입사했기 때문에 퇴사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김씨는 계약서를 쓰지 않은 이유를 묻자 “임 대표만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직원은 ‘한 가족’이기 때문에 계약서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김왕영 노무사는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 건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며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결국 지난해 4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며칠 뒤 S사를 퇴사했다. 김씨 제공
김씨는 결국 지난해 4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며칠 뒤 S사를 퇴사했다. 김씨 제공

임 대표 “내가 잘못된 방식으로 팀을 끌고 갔다”

김씨는 이런 임 대표의 갑질 내용을 정리해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가 쓴 글은 200회 넘게 공유되고, 1,000개 넘게 ‘좋아요’를 받는 등 SNS에서 큰 화제가 됐다. 임 대표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19일 연락하자 그는 “지금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임 대표는 이날 밤 김씨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내가 너무 잘못된 방식으로 팀(회사)을 끌고 갔다”며 사과했다.

“오늘 올린 글을 보고 가장 먼저 죄송한 마음이 들었고, 진심으로 저를 한 번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 동안 얼마나 (김씨에게) 큰 상처와 고통을 주었을까 생각해봤다. (중략) 잘못 했던 부분들을 깊이 생각하며 반성하고,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깊은 다짐을 하고 있다. 제 공개적 사과를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겠다. (후략)”

임 대표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성을 지르고, 온갖 가시 돋친 말을 내뱉으며 직원들을 괴롭혀 왔다. 회식을 강요하고, 욕설로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준 것도 사실”이라며 김씨의 폭로 내용을 인정하는 사과문을 올렸다. 그는 “이번 일은 100% 제 개인의 부덕함과 잘못에서 출발한 일”이라며 “제가 바뀌어야만 해결될 일이고, 저만 바뀌면 될 일”이라고 밝혔다.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아래는 임 대표가 올린 글 전문.

임상훈입니다.

회사를 떠난 직원이 저에 관해 쓴 글을 보았습니다.

글에 적힌 저는 괴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핑계를 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시간 저의 모습을 돌아보니 모두 맞는 말이었습니다.

고성을 지르고 온갖 가시 돋친 말들을 내뱉으며 직원들을 괴롭혀 왔습니다.

회식을 강요하고, 욕설로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

어찌하다 이런 괴물이 되었을까 제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지위라는 것도 갖게 되다 보니 독선적인 사람, 직원에 대한 존중과 배려심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를 빌어 그동안 저의 부족함으로 고통받고 회사를 떠난 직원들, 그리고 현재 직원들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회사의 문제도 아니고, 시스템이 없어서나, 잘못된 문화 때문도 아닙니다. 이번 일은 100% 저 개인의 부덕함과 잘못에서 출발한 일입니다.

제가 바뀌어야만 해결이 될 일이고, 저만 바뀌면 될 일이니 회사나 회사의 다른 구성원들에게는 그 어떤 피해도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글을 빌어 얼마 전 SNS에 글을 올린 퇴사 직원에게도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직접 만나 사과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나 아직은 때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고 해도 지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겠죠.

지난 상처를 씻을 수도 없을 겁니다.

제가 건강한 한 인간으로서 바로 서고 직원들에게 올바른 대표의 모습을 보여줄 때,

그렇게 해서 ‘신뢰’라는 말을 감히 할 수 있을 때

덕분에 ‘제가 사람 되었다’고

감사의 말과 함께 진심어린 사과를 전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지켜봐주시고, 부족함이 있다면 질타해주십시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저로 인해 상처받으셨던 한 분 한 분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임상훈 드림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