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성 띤 화합물 도심 미세먼지
필터 닿는 순간 척력·인력 작용
자석처럼 달라붙어 철통 방어
0.1㎛ 입자까지 끌어당겨 포획
세척하면 정전기 완전 사라지고
얽혀있는 섬유조직도 뭉치게 돼
하루 정도 쓴 제품은 폐기해야
봄날의 완벽한 날씨를 망칠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큰 피해를 주는 미세먼지가 이제 일상이 됐다. 미세먼지 발생을 줄일 수 있는 뾰쪽한 대책이 아직 없어, 결국 미세먼지의 피해를 줄이는 것은 개인 각자의 몫이 됐다. 방법도 많지 않다. 실내 공간이라면 외부 공기를 차단하거나 공기청정기를 쓸 수도 있지만, 외출한다면 미세먼지 마스크가 미세먼지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황사나 미세먼지를 막기 위해선 반드시 ‘KF80’ ‘KF94’ 같은 표시가 있는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일반 마스크는 별 효과가 없으니 반드시 ‘KF’ 표시가 있는 마스크로 호흡기를 보호해야 한다고 권한다. KF는 한국 필터(Korea Filter)라는 뜻의 식품의약품안전처 인증 표시인데, KF80은 평균 지름 0.6㎛(마이크로미터ㆍ1㎛는 0.001㎜) 크기의 미세입자를 80% 이상, KF94와 KF99는 평균 지름 0.4㎛ 크기의 입자를 각각 94%, 99% 이상 걸러낼 수 있다는 뜻이다. 명칭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국내에선 통상 지름 2.5㎛ 이하의 미세먼지(Particulate Matter)를 PM2.5 혹은 초미세먼지라고 부르고, 지름 10㎛ 이하의 대기오염물질을 미세먼지(PM10)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미세먼지 마스크는 어떤 원리로 미세한 오염물질의 유입을 막아주는 것일까. 겉보기엔 단순한 천 조각처럼 보이지만 작은 마스크에는 복잡한 과학 원리가 숨어 있다. 한국쓰리엠 연구소의 기술지원 팀장인 이민철 부장은 “충돌, 간섭, 중력침강, 확산 등의 물리적인 작용을 통해 마스크의 필터가 미세먼지를 차단한다”고 설명했다.
이 부장의 설명에 따르면 입자가 큰 미세먼지는 우선 중력에 따라 아래로 끌려 내려가다 그물에 걸린다(중력침강). 공기는 무게가 매우 가볍기 때문에 움직이는 경로에 방해물이 있을 경우 이를 피해가지만, 입자는 경로를 바꾸지 못해 섬유 조직에 부딪혀 걸러지고(충돌), 그보다 작은 입자는 공기의 흐름에 따라 이동경로를 바꾸긴 하나 충분히 피해갈 만큼 빠르지 않아 섬유 조직의 끝에 걸린다(간섭). 0.1㎛ 이하의 매우 작은 입자는 공기의 흐름과 관계없이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브라운 운동’을 하다 섬유 조직에 흡착되면서 걸러진다(확산).
미세먼지 마스크는 주로 부직포 같은 재질을 사용해 만든다. 일반 마스크가 조직이 직각으로 교차된 일반 섬유를 쓰는 것과 달리 미세먼지 마스크는 무작위로 얽혀 있는 섬유 조직을 사용한다. 일반 섬유 조직보다 틈이 더 작아 일반 마스크가 여과할 수 없는 작은 먼지 입자까지 걸러낼 수 있다.
하지만 미세먼지를 막기 위한 마스크 필터의 주요 타깃은 이 같은 방식으로는 걸러낼 수 없는 0.1~1㎛ 크기의 초미세먼지 입자다. 이 부장은 “먼지를 철저하게 걸러내려고 마스크 섬유조직을 더 촘촘하게 하면 숨을 쉬기 어렵기 때문에, 섬유 조직을 촘촘하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충돌, 간섭, 중력침강, 확산으로 잡히지 않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까지 걸러내기 위해 정전기를 입힌 필터를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미세먼지 마스크의 핵심 기술은 정전기를 활용한 필터에 있는 것이다. 정전기는 말 그대로 전하의 분포가 시간적으로 변화하지 않고 정지 상태에 있는 전기를 말한다. 겨울철에 스웨터나 코트를 벗은 뒤 문고리를 잡으면 순간적으로 강렬한 정전기를 느끼게 되는데, 이 같은 정전기는 물체가 다른 물체와 접촉하면서 생기는 마찰을 통해 전자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저장된다. 전자를 잃은 쪽은 양(+)전하가 되고 전자를 잃은 쪽은 음(–)전하가 되어 전위차(전압)가 생긴다. 이처럼 전자를 주고받으며 저장된 전기가 멈춰 있다가 전기적 유도 작용을 일으키는 물질인 유전체(誘電體)에 닿을 때 순식간에 전기가 이동하면서 불꽃을 튀기는 것이다. 정전기는 움직이는 전기가 아니어서 전류 크기는 매우 작지만 옷과 옷의 마찰력만으로도 최대 수만 볼트의 전압이 순간적으로 신체에 머무르게 된다.
일상생활에서 짜증을 유발하는 정전기가 미세먼지를 제거하는 데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고마운 존재다. 마스크에는 미세먼지를 걸러내기 위해 2만5,000볼트 이상의 초고압 전류로 정전 처리된 정전 필터를 사용한다. 서로 다른 극의 자석이 달라붙듯 양전하나 음전하로 극성을 띠고 있는 미세먼지를 정전기가 붙잡는 것이다. 야외활동을 방해하는 미세먼지 대부분은 토양 입자나 해염 입자, 꽃가루, 균류의 포자 같은 자연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과 교통, 산업 활동 등으로 생기는 질산염(NO3-), 암모늄(NH4+), 황산염(SO42-) 등의 이온 성분과 탄소화합물, 금속화합물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 입자는 모두 극성을 띠고 있어서 초고압의 정전기로 처리된 필터에 고루 분포된 양전하와 음전하에 의해 서로 밀어내는 척력, 끌어당기는 인력에 따라 섬유 조직에 흡착된다. 일반 가정에서 쓰는 공기청정기와 석탄화력발전소의 집진장치도 비슷한 원리로 미세먼지를 걸러낸다.
필터는 2만5,000볼트 이상의 초고압 전류로 정전 처리한다. 마스크를 착용해도 전기를 전혀 느낄 수 없는 건 전기가 멈춰 있기 때문이다. 이 부장은 “정전처리의 기술 차이는 얼마나 균일하게 고전압의 정전기를 섬유 조직에 입힐 수 있느냐, 섬유 조직에 입힌 정전기를 얼마나 오랜 시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종의 표면장력을 만들어 정전기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둬두는 고차원적 기술을 쓴다”고 덧붙였다.
마스크는 통상 하루 정도 쓴 뒤 폐기해야 한다. 성능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수챗구멍에 이물질이 쌓일수록 머리카락이 더 잘 걸러지듯이 미세먼지가 흡착돼 있을수록 필터의 성능이 더 나아질 수도 있다”며 “그러나 그만큼 호흡이 어려워져 마스크로서의 성능이 저하되므로 다시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세척해서 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마스크가 물에 젖으면 정전기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필터 내부의 정전기가 모두 사라지고 섬유 조직도 서로 뭉치게 돼 마스크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이 부장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인체의 호흡에서 나오는 수분마저 버티지 못하는 정도는 아니다. 그는 “비 오는 날의 습도인 90%까지 버틸 수 있는 필터가 대부분”이라며 “필터 외부를 방수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적인 표면장력으로 작은 물방울들이 전기에 닿지 않도록 하므로 정전기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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