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10~20년 후 농민이 스포츠카 타는 시대가 올 것" 세계적인 투자가 짐 로저스가 최근 우리나라를 방문해 한 말이다. 정말로 가능한 일일까? ‘농사짓는 기자’가 대한민국의 ‘촉망받는 농업 CEO’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초보 농업인 시절 누군가 직업을 물으면 위축됐어요”
전북 김제시 23만m²(7만여 평) 밭에서 고구마를 재배해 연 매출 6억 원을 올리는 강보람 대표(27). 지금은 ‘성공한 농업인’으로 불리는 그도 처음 농업인에 대한 편견에 농사를 그만둘까 고민했다. 지금은 가장 큰 무기가 된 ‘청년’이라는 장점도 당시에는 약점으로 사람들 눈에 비쳤다.
농업대학에 입학했을 때도 그랬다. “젊은 여자아이가 할 게 없어 농사를 짓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정도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부모님의 설득과 농업에 대한 미래가 강 대표를 붙잡았다.
‘나, 브랜드 있는 고구마야’
2014년 대학을 졸업한 강 대표는 가장 먼저 고구마 브랜드부터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일반 고구마보다 맛과 품질이 월등하지만 같은 가격을 받는 것이 너무나 억울했다. 아버지와 함께 브랜드명을 ‘강보람 고구마’로 정하고 제품 포장에는 캐리커처를 넣었다. ‘부녀’가 생산한 믿고 먹을 수 있는 제품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도매시장이 유일했던 유통망도 홈페이지, 해외 수출, 기업 납품 등으로 넓혀갔다. 변하는 소비자들의 입맛을 위해 신품종도 도입했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홍보를 위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채널을 열어 고객들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였다.
이런 그의 도전은 불과 1년 뒤 결실로 돌아왔다. 2015년 ‘청년 농부가 고구마 농사를 짓는다’는 소문이 퍼지며 방송 출연 요청이 쏟아졌다. 얼굴이 알려지자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의 주문이 몰렸고 순식간에 ‘대박’이 났다.
유명세는 해외로까지 뻗어 나가며 지난해 처음 5t의 고구마를 홍콩으로 수출했다. 금액으로 1억 원이다. 올해는 물량을 늘려 4억 원어치를 수출한다. 홍콩에서 일주일 만에 고구마가 완판됐다는 소식에 싱가포르 등지에서도 수출을 요청할 정도다.
판매량이 증가하면 생산 규모를 늘려 상품을 늘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강 대표는 오히려 농장 규모를 줄일 계획이다. 고구마의 양보다 질에 집중할 때가 왔다는 판단에서다. 질을 높이려는 노력은 지속해 강 대표의 고구마는 2016년 ‘전국에서 가장 품질 좋은 고구마’로 선정되기도 했다.
‘농부니까 행복하다’
농업의 특성상 한겨울을 제외하고 다 농번기다. 2월부터 고구마 파종을 준비하고 12월 말까지 제품을 출하해야 한다. 일은 새벽 5시부터 시작된다. 농사일은 해가 지면 마무리되는 게 보통이지만, 강 대표만의 업무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낮에는 재배를, 저녁에는 홍보와 배송을 준비한다. 농장의 모든 것을 총괄해야 하는 대표라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다.
바쁜 일상이지만 강 대표는 농사를 선택한 것이 ‘신의 한 수’라고 말한다. 학창시절 생각해 봤던 거의 모든 직업을 농업을 함으로써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강의하며 ‘교사’를, 방송으로 ‘연예인’을 SNS로 ‘작가’를 경험했다.
또 농업은 올해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와의 인연도 만들어줬다. 청년 농업인 모임에서 만난 남자친구는 오디와 버섯을 재배한다. 서로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이해와 배려가 남다르다. 재배 작물이 달라 바쁜 시기엔 일손을 서로 돕기도 좋다.
강 대표는 언제나 바쁘지만, 농업에 종사하는 친구들을 만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또래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친목을 모두 얻을 수 있어서다. 농한기에는 여행을 함께 가거나 공부를 하며 교류를 이어간다.
“친구들을 보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상당한 것 같아요. 그렇다고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닌데 말이죠”
강보람 대표는 “농업을 포기하려 했을 때 잡아 준 부모님이 정말 감사하다”고 말한다. 또 편견을 이겨내고 농업을 포기하지 않았던 본인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과 자부심도 있다. 이제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자신의 직업이 ‘농업인’이라고 이야기한다. “농업은 기회”라고 설명하는 것도 행복하다.
“사람들은 제가 성공했다고 이야기하지만 전 아직 진행 중이에요.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요. 지금도 농촌은 청년들에게 기회의 땅이에요.”
김태헌 기자 119@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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