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핵무기 보유국 인정 받으려는 것” 지적
“경제 현대화 초점” “협상 의지 보였다” 긍정 평가도
북한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21일 핵ㆍ미사일 실험 중단 방침을 발표한 데 대해 서구의 북한 전문가들은 일제히 회의론을 내비쳤다. 이들은 북한의 선언이 전향적이기는 하지만 현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드러낸 입장은 실험 중단일 뿐 비핵화가 아니라며 지나친 낙관은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미국의소리(VOA)와 인터뷰에서 “김정은의 발언을 보면 핵실험을 중단하겠다는 이유로 핵무기 완성을 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는 더 이상 실험이 필요 없다는 의미이지 정치적 결정으로 보이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또 “폐기하겠다는 풍계리 핵 실험장은 6차례 실험으로 이미 노후화한 곳”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다만 그는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가 어떤 의미인지 지금 단계에서 속단하기는 이르다며 “북한 진의를 여러 차례 예비 회담을 통해 파악해 나가야 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미국 보수 싱크탱크인 국가이익센터의 해리 카지아니스 방위연구국장도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선언에 대한 과대평가를 경계했다. “김정은이 발표한 모든 조치는 언제든지 되돌릴 수 있고 단지 공허한 약속에 불과하다”라며 “북한은 자기 약속을 자주 깨는 것으로도 유명하다”고 주장했다. 카지아니스 국장은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이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경우 다시 위협적 태도로 돌아설 수 있다”라고 경고하며 “국제사회가 희망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는 있지만 어리석을 이유까지는 없다”라고 밝혔다.
오히려 일련의 회담을 통해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으로 사실상 인정을 받겠다는 의지가 들어 있다는 시각도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주한 미국대사로 거론됐던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미국 온라인매체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건 비핵화 성명이 아니라 북한이 책임 있는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성명”이라며 “누구도 북한을 믿진 않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통해) 이에 동의한다면 북한은 만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슈아 폴락 미들버리국제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역시 AP통신에 “이번 선언으로 김정은은 자신이 핵 보유 국가가 됐다고 선언한 것이고, 다른 나라들이 핵을 포기할 때 비로소 핵을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지적했다. 핵확산 전문가인 비핀 나랑 매사추세츠공대 정치학과 조교수는 AP통신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어떤 북한 지도자도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을 허가 받지 못했는데, 김정은은 ‘핵무기 보유국’ 지도자로서 그걸 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 앉는 것만으로 김정은은 상당한 국내외 정치적 승리를 얻어내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물론 이런 회의론보다는 비핵화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에 방점을 찍은 전문가들도 있다. 참여과학자모임의 국제 안보 담당 공동국장 데이비드 라이트는 로이터통신에 “우리 모두가 김정은이 정말로 협상에 진지한지를 알고 싶어하는데, 이런 선언은 분명히 그가 진지하게 임하고 있으며 세계에 자신이 그렇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조엘 위트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선임연구원도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의 최근 움직임에 대한 서방 전문가들의 회의적인 시선이 지나치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김정은의 의도는 이제 핵 개발에서 북한의 경제 현대화로 초점을 바꾸려는 것이고, 이번 21일 성명도 그 점을 강조하고 있다”라며 “이는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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