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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ㆍ북미 회담 의미
김준형 “정상들이 만나서 결정
실패 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물러날 곳도 없는 기회가 온 셈”
김동엽 “김정은 전략적 선택
文대통령의 기회 포착ㆍ판단
트럼프 취향 ‘3박자’ 맞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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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과연 핵 포기할까
김준형 “생존 위해 핵 개발 불구
핵 탓에 생존 위협 당해 딜레마
北, 패키지 제공하면 포기할 것”
김동엽 “김정은, 인민들이 웃는
행복한 나라 만들겠다고 이야기
비핵화 과정이 전환점의 시작”
4ㆍ27 남북 정상회담이 임박했다. 여기서 진전된 한반도 비핵화 논의를 토대로 5월 말이나 6월 초에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일촉즉발 긴장감만 감돌던 한반도에 느닷없이 닥친 대화 국면이다. 이번에는 정말 북한이 핵을 포기할까. 그래서 한반도에 평화의 단초가 마련될까. 20일 이뤄진 북한의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중단 선언으로 기대감은 더 커진 상황이다. 그러나 과거 실패 경험에 근거한 회의론이 여전하고, 갈 길이 멀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와 김동엽 경남대 교수는 각각 국제 및 안보 분야를 기반으로 한반도 문제에 접근하는 소장 학자들이다. 지난달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남ㆍ북ㆍ미 1.5트랙(반관반민) 대화에 나란히 참석하는 등 현 정부 대북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이 작지 않다. 두 교수와 함께 11년 만의 남북 정상회담과 그 이후를 전망했다.
김준형 교수는 “자존심과 생존이 보장된다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라며 “비핵화 반대급부로 한미가 뭘 해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했고, 김동엽 교수는 “이미 (비핵화로 향하는) 북한 열차가 출발해 ‘핵ㆍ미사일 실험 유예’라는 역을 지났다”며 “이 열차가 ‘비핵화’ 종점까지 갈 수 있도록 철로를 정비하고 연료를 공급하는 건 한미의 역할”이라고 했다. 대담은 2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약 1시간 30분 동안 이뤄졌다. 진행=이계성 논설고문 겸 한반도평화연구소장 wkslee@hankookilbo.com
남북, 북미 정상회담 의미
이계성 고문(이하 사회)=우선 남북, 나아가 북미 정상회담의 역사적 의미를 짚어보자.
김준형 교수(이하 김준형)=17일 전문가 자문단 비공개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회담의 역사적 의미를 얘기했다. 하루아침에 된 게 아니라 평생의 꿈이었다고, 2007년 준비위원장이 지금은 주역이 됐다고, 기대감도 크지만 여전히 유리그릇 만지듯 긴장된다고 토로했다. 세계사에서 1970년대가 데탕트(긴장 완화)의 시기였지만 냉전 체제는 무너지지 않았다. 90년대에 무너졌다. 한반도에 적용하면 2000, 2007년은 데탕트였고 2018년에 드디어 냉전을 무너뜨릴 수 있는 기회가 온 셈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정상들이 결정하기 때문에 더 높이 갈 수 없고 실패하면 더 깊은 냉전 수렁으로 빠지게 될 테니 물러날 곳도 없다.
김동엽 교수(이하 김동엽)=지금 상황까지 온 데 대해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 하고 싶다. 완전히 운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절묘한 환경적 요인이 분명히 있다고 본다.
김준형=복칠기삼(福七技三)이라는 표현이 낫지 않을까.
김동엽=표현이야 어떻든 평창 동계올림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라는 기회 여건이 왔다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그걸 캐치해 만들어가는 것도 상당히 중요한데 그게 또 절묘했다. 북한을 너무 과대 평가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사실상 핵 무력ㆍ경제 건설 병진 노선을 접은 20일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 결정은 2008년 이후 10년 로드맵의 결과일 수 있다. 우리는 이명박ㆍ박근혜 정권을 지나며 늦게 시작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그 기회 요인을 정확하게 포착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략적 선택과 문 대통령의 기회 포착 및 판단, 트럼프 대통령의 취향 등 세 박자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의미를 부여한다면 신이 내린 복과 기회를 결국 남북, 북미 정상회담으로 만들 수 있었던 건 이번 정부가 나름대로 꾸준히 준비하고 전략적으로 판단한 덕이 아닌가 싶다.
김준형=문 대통령은 (천일 동안 매일 밤새 이야기를 만들지 않으면 죽을 운명이었던) ‘아라비안 나이트’의 세헤라자데라고 볼 수 있다. 기회를 날리지 않고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과연 북한은 핵을 포기할까
사회=정세가 긍정적으로 흘러가고는 있지만 과연 김 위원장이 그렇게 힘들게 만든 핵을 포기할까 하는 의구심이 아직 적지 않다.
김준형=만약 북한의 핵 개발 목표가 적화통일이었다면 포기하지 않겠지만 생존이었다면 얘기가 다르다. 자존심과 생존이 모두 보장된다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본다. 그건 한미가 뭘 주느냐의 문제다. 이제 검증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없다. 이미 (핵을) 다 가졌기 때문이다. 100만명이 가도 개발한 핵을 다 찾지는 못할 거다. 그렇다면 신뢰가 관건이다. 두 개의 신뢰가 있다. ‘북한이 정말 (비핵화를) 할 것인가’ 하는 우리 쪽 신뢰와 ‘핵 폐기를 해도 내 생존이 보장될 것인가’ 하는 북한의 신뢰. 두 신뢰가 만나는 점에서 타결이 이뤄질 거다. 핵 보유국 딜레마라는 게 있다. 생존을 위해 핵을 개발했는데 그 핵 탓에 생존이 위협 당할 때 쓰는 말이다. 생존을 확보해주되 북한의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당당히 포기하게 할 수 있는 패키지가 제공된다면 포기할 수 있다고 본다.
김동엽=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믿는다면 남북 정상회담이나 북미 정상회담을 왜 하는 건가. 핵을 포기하게 만들어야 한다. 선택은 북한 몫이지만 그 선택을 하게 만드는 건 우리나 미국이다. 북한이 어렵사리 핵을 만든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니다. 생존 차원도 있지만 생존 이상도 있다. 일단 살고 난 다음에는 잘 살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히 있다. 안보 영역에서 경제 영역으로, 생존에서 행복으로 가야 한다. 북한이라는 나라가 영원히 불량 국가로, 자신이 독재자 모습으로 남는 걸 김 위원장은 원하지 않을 거다. 20일에도 분명히 얘기했다. 인민들의 웃음소리가 나는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포기할 것을 왜 만들었냐는 논리적 모순에 북한이 빠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런데 핵을 만들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순간까지 올 수 있었을까. 여기까지 오려고, 생존을 위해 핵을 개발했고, 여기서 전환점을 만들어 행복의 영역으로 가려면 핵을 포기해야 한다고 본 거다. 비핵화라는 건 사건이나 이벤트가 아니다. 하나의 과정이다. 유예에서 시작해 동결과 불능화, 폐기까지 전체가 다 비핵화다. 그런데 우리는 끝 부분(비핵화)만 생각한다. 예컨대 북한이 (핵실험을) 유예했다면 이미 비핵화의 길에 들어선 거다.
사회=21일 관영 매체를 통해 북한이 핵ㆍ경제 병진 노선을 결속(마무리)했다고 했다.
김동엽=종결했다는 거다. 핵 보유라는 전략 노선의 목표를 달성했다는 거다. 핵 무력 가졌고 이제 안전 문제가 해결됐기 때문에, 다시 말해 핵 무력 발전은 끝났고 완성했기 때문에 병진 노선의 한 축인 핵 무력 발전이라는 게 의미가 없어졌다. 그래서 오로지 경제 발전 노선이 남는 거다. 더 이상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는, 달리 얘기하면 유예다. ‘미래 핵’을 제거한 거다. 그런데 하나가 추가됐다. 핵실험장을 부수는 건 프로그램 자체를 폐기하겠다는 뜻이다. 유예뿐 아니라 동결과 불능화 단계까지 얘기한 거다. 유예 다음 단계인 동결도 시작했다는 걸 보여주는 엄청난 발표다. (북한 비핵화 열차는) 이미 유예라는 역을 출발했고, 벌써 동결과 불능화의 역으로 가고 있다. 기차 머리가 동결을 통과하고 있는 상황이다. 종착역이 비핵화인데, 도착할지 여부를 우리는 지금 단정할 수 없다. 그런데 단정해버리는 측면이 있다. 가지 않을 거라고. 기차가 비핵화 역까지 가는 길은 철로가 깨끗하지도, 교각이 잘 돼 있지도 않을 거다. 연료가 충분치 않을 수도 있다. 그걸 우리가 해줘야만 도착을 하는 거다. 그것도 안 해주고 무조건 가라고 할 수 없지 않나. 방향성과 출발 사실은 인정한 뒤 도착할 수 있는 과정을 우리가 고민해야 한다.
김준형=일단 북한 정권이 주민을 설득하는 내부 논리 측면에서 보면 ‘우리가 핵 무력을 완성했고 이제 필요 없으니 자신 있게 세계 평화를 위해 던진다’는 논리 구조로 가는 거다. 두 번째는 미국이나 우리를 향한 대외 메시지다. 북한은 3장의 카드가 있다. 미래 핵, 현재 핵, 과거 핵. 미래 핵은 모라토리엄(유예)을 한 번 던졌다. 대북특사한테 처음 던졌고 이걸 정책으로 당 차원에서 확정한 거다. 현재 핵 카드인 핵 프로그램은 남아 있다. 이게 검증과 사찰의 대상이 된다. 마지막까지 남는 게 과거 핵인 완성한 핵이다. 그건 북한이 자발적으로 포기하지 않으면 사실상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신뢰의 문제가 남는 거다.
북한 경제, 중국ㆍ베트남 식으로 가나
사회=21일 발표에서 북한이 핵 폐기 이후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집중한다고 했다. 경제 발전은 시장 경제를 어느 정도까지 수용하냐의 문제다. 중국ㆍ베트남 식으로 갈 수 있을까.
김동엽=현재 500개 가까운 장마당으로 북한 경제가 돌아가고 있다. 국제 제재 하에서도 북한 경제가 돌아가는 건 중ㆍ러의 물밑 도움도 있겠지만 (장마당 기반의) 인민 경제 덕이다. 우리는 통상 장마당은 시장 개방이고, 북한 인민이 장마당에서 돈 맛을 알게 되면 세습 정권에 위협이 될 테고, 결국 북한이 붕괴될 거라고 믿어온 경향이 있다. 희망적 사고다. 장마당 500개가 생겼지만 북한은 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돈주라 불리는 전주(錢主), 이런 신흥 세력들과 북한 엘리트, 지도층과의 결탁, 즉 북한판 정경유착이란 개념이 생겼기 때문이다. 통치자금이 과거처럼 외화나 불법 거래 등을 통해 들어오는 게 아니라 내부 상납 같은 것들을 통해 메워지는 거다. 우리 기대와 달리 이 정권이 안정적으로 가야만 신흥 세력 자신들의 기득권이 유지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게 된 지 이미 오래다. 그런데도 우리가 지난 9년 동안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또 한 가지, 500만대 스마트폰. 2011년 중동 재스민 혁명 당시 휴대폰이 북한에 들어가면 망할 거라고 했는데 망했나. 과거 억압과 통제 대신 다른 통치 기제가 드러나고 있는 거다. 북한은 지금 안정기일 수도 있다.
김준형=선택지가 두 개라면 베트남 쪽이다. 국가가 완전히 장악하는 자본주의다. 중국은 너무 풀어줬다. 북한의 경우 지금 다 신용카드 쓴다. 주유소에서도 다 카드를 쓴다. 전산화가 다 됐다. 세계와 이어지지 않을 뿐이다. 금융이 장악된 거다. 그 덕에 정권이 돈의 흐름을 다 안다. 뇌물 흐름까지 알 수 있을 정도다. 500개의 장마당과 자본가들은 김 위원장이 수십년 자신과 함께 가야 한다고 판단하는 권력층이다. 신흥 엘리트는 자본가이고 이들을 장악하는 시스템만 만든다면 (북한 정권은) 오래 간다고 본다.
김동엽=그래서 2018년이 중요하다. 신흥 세력이 웃을 수 있는 건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에서다. 전쟁 걱정, 미국이 쳐들어온다는 걱정 안 하고 경제 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면 그게 정부의 안정이 되고 정경유착이 되는 거다. 지금까지 그들의 생존 문제를 해결해줘야 했는데 해결 시점이 2017년이었다. 안보의 영역이 경제의 영역, 그러니까 그냥 사는 게 아니라 잘 사느냐 못 사느냐의 문제로 넘어오는 시점이 2018년이다. 이제 만들어야 하는 거다. 못 만들면 김정은 정권은 존속 불가능할 수도 있다. 북한이 줄곧 강조해온 게 국가경제개발 5개년 전략인데 2018년은 3차년 되는 해다. 딱 중간, 넘어가는 해다. 지난해까지는 병진이었는데 말이 병진이지 핵 무력 완성에 주력하며 경제에는 소홀했다. 그런데 이제 강성국가 영마루(고개의 맨 꼭대기)로 들어가기 위해 경제로 올인 하는 해로 만들어 주겠다고 얘기하고, 인민들에게 절대 전쟁 안 난다고 확인시켜줘야 하는 거다. 그게 2018년이다.
김준형=‘조금만 더 제재하면 북한을 무너뜨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들이 있다. 제재가 돈주들의 성장을 막는 만큼 제재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 수십년 동안 김정은 정권과 함께 갈 신흥 엘리트 계층이 제재 때문에 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이걸 풀어줘야 하는 거다. 물론 이게 트로이 목마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김 위원장에게 이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고 본다. 권력도 지키고 인민도 잘 살게 하는. 그래서 전략적 선택인 거다. 닫고 못사는 대신 평생 존경 받는 지도자로서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들어 인민들을 배부르게 해준다는 선택을 했다고 본다. 잘못된 선택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한반도에 평화체제는 구축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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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김준형 “文대통령, 길잡이 역할로
남북회담서 비핵화 방향만 잡지 말고
종전 선언 ‘울타리’도 함께 쳐야”
김동엽 “북미회담ㆍ비핵화에 치중
남북이 변수 역할 할 뭔가 있어야
그것이 ‘종전 선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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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협상 진전 걸림돌은
김준형 “美 전략가들에게 북한은
대중 공세ㆍ아시아 전략 중요 카드
北, 억류자 3명 보내며 대응 할 듯”
김동엽 “北, 美에 대한 학습 잘돼
북미회담서 인권문제 들고 나와도
유연하게 반응할 가능성 커”
사회=결국 비핵화와 더불어 종전 선언, 나아가 평화체제 구축이 진행될 텐데.
김준형=평화체제는 북한이 과거 핵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패키지다. 여러 번 얘기했지만 북한이 정말 미군 철수를 원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협상 카드는 된다. 실제 원하지 않아도 (보상을 받기 위해) 베풀어줄 수 있는 카드다. 그런 패키지를 어느 기간 내에 얼마나 주면 북한이 포기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이번에는 2005년 9ㆍ19공동성명 때와 달리 최종 상태(end state)와 시한(end date)을 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미국도, 북한도 원한다. 북한이 동시적ㆍ단계적 해법을 얘기한 건 일부가 해석하는 것처럼 조건부로 (시간을 벌기 위해) 죽 늘려가겠다는 게 아니고 한번에 줘야 한번에 포기한다는 의미다.
김동엽=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는 ‘현재 핵’까지라고 믿는 이들이 많다. 잘못된 생각이다. 개념상 남ㆍ북ㆍ미 비핵화에는 간극이 있을 수 없다. 과거 핵까지 포함해 모든 핵을 없애는 게 그게 비핵화다. 현재 핵은 비핵화가 아니라 핵 프로그램 동결ㆍ불능화다. 9ㆍ19공동성명 시기(2005년)에는 북한에 완성된 핵이 없었다. 핵실험을 했고 물질은 있었지만. 그래서 동결ㆍ불능화가 비핵화였던 거다. 그 등가물이 평화체제라고 여겨지는 평화 협정과 북미 수교다. 하지만 수교와 협정이 곧 평화체제는 아니다. 상당 부분이지만 그래 봐야 하나의 현상이고 결과물일 뿐이다. 이뤄진 게 지켜져야 체제가 된다. 그래서 보장하고 유지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 9ㆍ19공동성명 당시 미국과 우리가 했던 방식은 단계적ㆍ순차적 방식이다. ‘(북한이) A를 해, (한미가) A'를 (보상)해줄게, 그 다음에 B를 해, B' 해줄게’ 이런 식이었다. 북한이 말하는 단계적ㆍ동시적 방식은 A와 A'가 같이 가는 거다. 선후 관계가 아니라 동시적으로 이뤄지는 로드맵을 우리가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싶다.
김준형=트럼프 대통령이 종전 선언을 얘기한 건 큰 의미가 있다. 왜냐면 비핵화는 미국 어젠다고 북한을 압박하는 카드다. 반면 평화 정착은 우리 카드다. 북한의 카드이기도 하고. 종전 선언은 트럼프 머리에 있는 게 아니다. 추측이지만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문 대통령 메시지를 미국에 갖고 가서 얘기했을 거다. 그걸 트럼프가 받아들인 거고.
김동엽=남북 간 종전 선언을 평화체제와 별도의 고리로 만들면 튼튼하고 특별한 남북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걱정되는 건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북미 정상회담과 비핵화로만 국한, 치중된다는 거다. 우리 스스로가 남북관계를 비핵화 문제에 종속시켜버리는 셈이다. 5, 6월 북미 정상회담에서 잘못된다면 남북 대화마저 문을 닫아야 하나. 북미 회담이 잘 안 되면 함께 롤러코스터 탈 건가. 그래선 안 된다. 남북이 변수 역할을 할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그게 종전 선언일 수 있다.
김준형=그래서 문 대통령한테 말했다. 중매보다 길잡이 역할이 좋다고. 길잡이는 방향을 잡아주는 거고 방향은 비핵화다. 울타리는 종전 선언이다. 우리가 울타리를 치는 거다.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방향만 잡지 말고 울타리도 쳐야 한다.
대북 제재 완화는 언제쯤
사회=경제 제재 해제 문제가 민감한데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을까.
김동엽=북미 회담이 지금 분위기로 간다면 제재 부분은 상당히 완화ㆍ유연화 될 걸로 본다. 제재는 지금까지가 아니라 앞으로의 문제다. ‘죽고 살고’에는 제재 영향이 별로 없다. 그런데 북한이 이제 생존이 아니라 행복의 문제로 간다고 하지 않나. 잘 살려면 분명 (제재가) 문제가 된다. 이런 차원에서 접근한다고 보면 결국 북한은 제재 완화를 바랄 거다. 그러나 다급하게 접근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중국 등이 물밑으로 풀어주는 것에 대해 미국이 ‘딴지’만 걸지 않으면 된다.
김준형=일종의 신뢰 조치다. 리스트에 올리는 게 무슨 효과가 있나. 김 위원장은 회담에 실패해도 건질 게 있다. 제재가 상당 부분 와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나왔는데 미국이 걷어찬 셈이어서 중ㆍ러가 제재에서 손을 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북한이 중국에 간 거다. 일단 당분간은 중국의 물밑 제재 이완에 미국이 딴지를 안 걸 거고, 시간이 지나면 가시적 조치로서의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같은 남북 경제협력을 묶고 있던 족쇄를 공식적으로 풀 수 있다고 본다. 당장은 굳이 건드릴 이유가 없다.
김동엽=사실 남북 문제 가운데 가장 나오기 어려운 게 경제 문제다. 지금 정상회담 논의에서 경제 부처 장관들은 빠져 있지 않나. 빼는 게 우리 편에서도 속 편하다는 거다. 제재 공조를 지키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니까.
비핵화 북미 협상 진전 걸림돌은
사회=복병 중 하나가 인권 문제다. 미 정부가 수교 등 보상 조치를 취할 때 의회가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다른 협상 진전의 걸림돌은 또 뭐가 있을까.
김준형=미국만 봤을 때 리스크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인권을 포함한 북한의 악마화다. 또 하나의 리스크는 미국의 전략가들이다. 허버트 맥매스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존 볼턴 현 보좌관의 차이인데 맥매스터 등 전략가들에게는 북한이 대중(對中) 공세와 아시아 전략에서 매우 중요한 카드였다. 그런데 북한이 (적에서) 풀려버리면 레버리지가 하나도 없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전략이 없다. 그래서 그가 우리에게 복(福)인 거다. 한미일이 대중 봉쇄망을 만들어놓고 북한과의 관계를 풀어야 하는데 문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이게 약화되기 시작했다. 북한을 악마화해 자극하는 게 전략가들 방법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검증 문제를 길게 잡는 방식이다. 9ㆍ19성명 때처럼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사사건건 의심하고 일본을 활용해 훼방하는 거다. 그걸 잘 막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선의(善意) 조치로 북한이 억류자 3명을 보낼 수 있다. 유엔에서 인권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것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전략적 준비를 했다는 거다.
김동엽=인권 문제가 북미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된다고 보진 않는다. 의제보다는 레버리지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걸 부각시키면 이 판이 깨지는 건 물론, 그 책임을 미국이 져야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에 대한 학습이 잘 돼 있다고 본다. 예컨대 2005년 9ㆍ19성명 직후 미 재무부가 BDA(방코델타아시아은행)를 제재했을 때만 해도 미국의 모순적 조치에 대한 이해가 북한은 부족했다. 그런데 요즘 보면 미국의 다원화한 민주주의를 수용하고 스스로 전략화할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지게 된 듯하다. 미국이 인권 문제를 들고 나와도 북한이 유연하게 반응할 공산이 크다. 대통령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미 의회 목소리 등을 이해할 것이다.
김준형=트럼프 대통령이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모습 중 하나가 국회 무시인데, 그게 우리에게 좋게 작동하는 측면이 있다.
정리=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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