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는 물가나 산기슭, 밭둑 등 어디서든 잘 자란다. 쉬이 볼 수 있는 것만도 40여 종에 이른다. 가지에 꽃 이삭이 잔뜩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귀여운 강아지가 꼬리를 치는 것 같아 ‘버들강아지’나 ‘버들개치’로 불릴 정도로 친근하다. 버들가지가 꽃 이삭을 드러내야 봄이 한창이고, 지금이 그때다. 어린 시절 버들가지 껍질을 비틀어 만든 버들피리를 불던 추억이 생생하다. 성장 속도가 빠르고 꺾꽂이로도 뿌리를 잘 내린다.
봄의 흥취를 흔히 ‘춘정(春情)’이라고 한다. 버드나무 잎은 청춘과 생명력을 상징하고, 그 빛깔인 유색(柳色)은 봄 색깔을 상징했다. 봄이 다시 온 것을 축하하는 청명(淸明)과 한식(寒食)에 버드나무를 깎아 불을 피워 각 관청에 나눠주는 관습이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버드나무는 봄과 청춘을 상징한 동시에 여인의 아름다움을 비유할 때도 자주 등장했다. 아름다운 여인을 묘사할 때 버들잎 같은 눈썹(柳眉ㆍ유미) , 버들가지 같이 가는 허리(細柳腰ㆍ세류요), 갸름하고 예쁜 얼굴(柳容ㆍ유용), 간드러지게 아름다운 교태(柳態ㆍ유태) 등의 말이 자주 쓰였다. 지금은 옛말처럼 된 ‘화류계(花柳界)’라는 말도 여인의 섬세한 아름다움과 관계가 깊다.
가지의 탄력성 때문에 ‘귀환(歸還)’을 연상시켰고, 기름진 땅이건 메마른 땅에서건 자리를 잡고 잘 산다는 이유로 전통 사회에서의 시집살이에 비유됐다. ‘여자 팔자 버드나무 팔자’라는 말에서 보듯, 운명에 순응하는 나무였다.
조선시대에는 여름철에 학질을 앓으면, 환자의 나이대로 버들잎을 따서 편지 봉투에 넣은 다음, 겉봉에 ‘유생원댁(柳生員宅) 입납’이라고 써서 큰 길에 버리는 풍속도 있었다. 길 가던 사람이 그 봉투를 밟으면, 그가 학질을 가져가 대신 앓게 되고 원래 환자의 병은 낫는다는 속신이 제법 널리 퍼져 있었다.
왕버들은 인(燐) 성분이 많아 종종 밤, 특히 비 내리는 밤에 빛을 내기 때문에 ‘귀신버들(鬼柳ㆍ귀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수명이 길어 정자나무나 당산나무 등 마을의 대표적 노거수가 된 게 적지 않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도 몇 있다.
청춘을 상징하면서도 묘하게 흉한 일에도 많이 쓰였다. 부모 상례에서 아버지는 대나무 지팡이로 상장(喪杖)을 삼았지만, 어머니는 버드나무를 썼다. 시신 염습에서는 버드나무숟갈을 썼다. 버들가지로 아이를 때리면 성장을 가로막는다고 회초리로 쓰지 않았다. 또 집안에서 버들피리를 불면 뱀이 들어온다고 불지 않았다. 한편으로 나뭇가지가 늘어진 모습이 상(喪)을 당해 머리를 풀어헤친 여인의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집 가까이 심으면 불행을 가져 온다고 여겼고, 버드나무 암꽃은 성욕을 감퇴시킨다고 해서 손이 귀한 집에서는 버드나무의 암나무는 절대로 뜰에 심지 않았다. 지금도 제주도에서는 나뭇가지가 바람에 잘 흔들리듯, 바람을 피워 부부 사이를 멀어지게 한다고 집 안에는 심지 않는다.
버드나무는 약용식물로 유용하다. 버드나무의 해열ㆍ진통 효과는 인류 최고의 약이라는 아스피린의 예처럼 현대의학에서도 널리 인정받는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임산부가 통증을 호소하면 버들잎을 씹으라고 처방했고, 1899년 독일 바이엘사의 성분추출로 상용화된 게 아스피린이다. 한방에서는 잎과 가지를 진통ㆍ이뇨ㆍ해열제로 썼고, 민간에서는 각혈에 꽃을 달여 먹고 옻이 오르면 버들가지를 태운 연기를 쐬었다. 열매의 솜털을 지혈에 쓰기도 했다.
정구영 식물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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