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난해온 중남미 출신 난민행렬 일부가 24일(현지시간) 마침내 미국-멕시코 국경 앞에 도착했다. 그러나 매우 강경한 ‘반(反)이민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노선 탓에 최종 목적지인 미국을 코앞에 둔 이들의 바람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극히 불투명해 보인다.
로이터통신과 CNN방송 등에 따르면 중미 출신 난민 130명가량을 태운 버스 2대가 이날 저녁 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와 접한 국경 지대인 멕시코 티후아나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으로의 망명을 위해 지난달 25일 멕시코 남부 국경 지역에서 모여 출발했던 1,200여명 가운데 일종의 ‘선발대’가 먼저 도착한 것으로, 이들 중 대부분은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출신이다. 버스나 화물열차를 타고 이동 중인 2, 3차 난민 행렬도 이번 주말까지는 티후아나에 당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치적 박해나 살해 위협, 가난 등에서 벗어나고자 미국으로 향하는 중남미 이민자들은 범죄 위험에 대비하고 정치적 이목도 끌기 위해 매년 연례행사처럼 커다란 무리를 지어 이동한다. 올해의 경우 절반 정도 인원이 중도 포기하거나 멕시코에서 망명을 신청해 버려 최종적으로 미국 입국을 신청하게 될 사람들은 총 600명 정도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하지만 미국이 세운 ‘보이지 않는 국경 장벽’을 이들이 과연 넘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 동안 멕시코를 통해 유입되는 불법 이민자를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초강경 입장을 취해 왔다. 이달 초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자들의 입국 차단을 위해 약 4,000명의 주방위군을 멕시코 국경에 배치하는 포고령에 서명했다. 바로 전날에도 그는 트위터를 통해 “이러한 큰 이주자 무리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도록 놔두지 말라고 국토안보부 장관에 지시했다”고 밝히면서 ‘입국 불허’ 방침을 재확인했다. 뉴욕타임스는 “난민 캐러밴이 국경에 도착했지만, 이들에게는 (아직도) 기나긴 길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민자 행렬 자체가 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중남미 난민 문제는 당분간 계속해서 국제사회의 현안으로 남을 전망이다. 이날 티후아나에 도착한 엘살바도르 출신 38세 여성은 CNN에 “우리 모두 (미국에서) 환영을 못 받을 것이라는 점은 이해하지만 선택권이 없었다. 엘살바도르에 머물면 나는 살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는 얘기다. 32세의 온두라스인인 카렌 갈로는 “우리는 어떤 총도 들고 있지 않다. 온두라스에는 일자리도, 정의도, 법도 없다”면서 인도주의 차원의 망명 허용을 호소했다.
물론 이들이 망명을 신청한다고 해서 미국이 이를 모두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합법적 난민 지위를 부여받는 비율은 최대 10%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도 일단 망명 신청을 하면, 승인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3년가량 미국에 머물며 직업도 가질 수 있어 중남미 출신 미국 이민자 행렬은 꾸준히 증가해 왔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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