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 안전사고는 당국에 보고 의무화
환자안전 관련 건보 수가 올리고 ‘환자안전의날’ 지정
의료사고 발생시 의료진이 환자와 유족의 아픔에 공감하고 사과의 말을 하는 경우, 이런 유감 표명에 대해서는 소송시 배상 책임의 근거로 활용할 수 없게 하는 ‘사과법’ 도입을 정부가 추진한다. 중대한 환자 안전사고는 의료기관이 의무적으로 당국에 보고하도록 제도화 한다.
26일 보건복지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제1차 환자안전종합계획(2018~2022년)’을 발표했다.
투약 오류에 따른 환자 안전사고의 잇단 발생으로 2016년부터 환자안전법에 제정됐으나 미흡한 점이 많았다.
특히 국가보고학습시스템(KOPS)을 통해 환자 안전 사고를 의료기관이 자율 보고 할 수 있게 했지만, 의무가 아니어서 보고 누락이 잦았다. 자율보고는 의료기관에서 사망과 장애, 장해 등 환자안전사고가 생기면 그 내용을 공유해 다른 의료기관이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학습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하지만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에 따르면 최근 1년간 환자 안전사고가 있었다고 답한 의료기관 188곳(조사대상 의료기관은 207곳) 가운데 안전사고를 보건당국에 보고한 기관은 16.5%(31곳)에 그쳤다.
이에 복지부는 중대한 환자안전사고는 ‘적신호 사건’으로 분류해 발생시 의료기관에 보고 의무를 지우기로 했다. 적신호 사건은 사망이나 심각한 신체적ㆍ정신적 손상이 예상치 않게 발생했거나, 그런 위험이 있는 상태를 뜻한다.
단, 의무보고 대상의 구체적인 범위는 앞으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할 예정이다. 각종 행정비용 발생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의료계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중 의무보고 대상의 범위를 결정하고, 2020년까지 환자안전법 개정에 나서 법적 근거를 마련할 계획이다.
환자 안전사고 발생시 의료진과 환자ㆍ보호자가 보다 원활하게 소통을 할 수 있도록 ‘사과법’ 도입도 추진한다. 사과법은 환자 안전사고에 대해 의료진이 충분한 설명과 위로, 공감, 유감의 표현을 하는 경우, 이런 사과 표명은 재판이나 의료분쟁 조정에서 과실 책임 인정의 증거로 쓸 수 없게 하는 법이다. 지금은 의료진이 피해자 측에 하는 사과가 녹음되어 관련 재판에서 ‘의료진이 과실을 인정했다’는 증거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우려 탓에 의료진은 의료사고 발생 시 피해자 측과 만나 적극 소통하기보다는 피해 다니고, 피해자 측은 도의적 사과 한 마디 없는 의료진에 서운함을 느껴 합의 보다는 소송 등 고강도 대응에 나서는 악순환이 있었다.
사과법을 도입해 의료진이 피해자 측에 도의적인 사과 등을 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준다면, 의료진과 피해자가 보다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게 돼 의료사고가 원만한 합의로 해결되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복지부는 기대한다. 물론 사과법이 도입되더라도 의료진의 사과만 재판 증거로 쓸 수 없을 뿐, 다른 증거를 활용한 소송 진행은 가능하다.
사과법의 취지를 담은 환자안전법 개정안을 발의한 김상훈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미국은 복수의 주(州)가 사과법을 도입했다. 또한 미국에서 이뤄진 연구 결과, 사과법이 의료 소송을 줄이고 합의에 의한 해결을 늘리는 데 도움을 줬다고 한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사과법에 대해 “필요성에 공감한다”면서도 “의료진 사과만 믿고 의료사고의 증거인 시신을 장례 했다가 나중에 의료진이 말을 바꾸면 유족이 난처해지는 부작용 등이 없도록 법을 정교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복지부는 환자 안전에 필수적인 분야에 건강보험 수가를 인상해 의료기관이 적극적으로 환자 안전에 나서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올 상반기 중 약물안전 개선과 간호 안전 활동에 대한 수가를 높이고, 하반기에는 신속대응팀 운영과 수술실 감염예방 활동의 수가를 개선한다. 환자 안전사고의 유형과 규모 등 실태 파악을 위해 2020년부터 매 5년마다 환자안전사고 실태조사도 실시한다.
복지부는 또 고(故) 정종현군 사망일인 5월29일을 ‘환자안전의날’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종현(당시 9세)군은 대구의 한 대학병원이 2010년 백혈병 약을 잘못 주사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이 사고로 환자안전법이 제정됐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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