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회장 부부 탑승일정 맞춰
운항본부, 조종사에 매뉴얼 하달
휴식시간에도 단정한 복장부터
방송 때 발음 유의까지 ‘과잉 의전’
조현민 소환 다음주로 연기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부부가 국적기 기장들을 자가용 운전사 부리듯 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백 명의 안전을 총괄 책임져야 하는 기장은 시시콜콜 조 회장 부부 비위 맞추기용 지침을 따로 챙겨 따라야 했다. 도가 지나친 과잉 의전이란 지적이다.
한국일보는 26일 ‘KKIP 탑승에 따른 주의사항’이란 문건을 입수했다. ‘Korean Air VIP(KIP)’는 대한항공 사주 일가를 뜻하는데, 여기에 ‘K’가 하나 더 붙으면 특별히 조 회장과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 부부만을 가리킨다. 게다가 직접 승객을 응대하는 객실 승무원용이 아니라, 기장 부기장 등 운항승무원 대상 매뉴얼이다.
조 회장 부부의 탑승 일정이 정해지면 대한항공 운항본부가 해당 비행기 조종사에게 지침을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브레이크 사용에 주의하라는 사소한 주문부터 방송을 할 때 원어민 흉내내지 말라는 유난스러운 지시까지 담겨 있다.
구체적으로 ▦조종실과 FCRC(Flight Crew Rest Compartmentㆍ승무원 휴게공간) 안에서도 단정한 복장상태 유지 ▦지상에서 창 블라인드(가리개) 치지 말 것 ▦기장 방송을 할 때 발음, 톤, 강세, 쉼(Pause)에 유의할 것 ▦조종실에 KKIP가 들어오셔서 질문할 때 모르면 모른다고 답변하고 대충 답변하지 말 것 ▦조종실에 들어오시면 제반 절차를 시기에 맞춰 수행하고 의도적으로 수행시기를 늦추거나 간략히 수행하지 말 것 ▦착륙할 때 ‘오토 랜딩(자동착륙)’을 적극 사용할 것 등이다.
대한항공 직원 A씨는 “조 회장 일가가 워낙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중요시해서 기내 방송의 발음이나 복장, 외모를 과하게 지적한다”고 했다. 대한항공 조종사 B씨는 “몇 해 전 ‘지상에 서 있는 비행기가 왜 가리개를 치고 있느냐, 못 치게 하라’는 조 회장 불호령이 떨어진 이후 조종사들은 이유도 모른 채 규정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다수 조종사들은 휴식시간 복장 단속과 조 회장의 조종실 출입만큼은 다른 승객을 위해서라도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8시간에서 많게는 12시간에 이르는 장거리 비행의 경우 기장 부기장의 교대 휴식시간만이라도 편한 복장으로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직 기장 C씨는 “오너가 보기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장거리 비행 내내 제복을 갖춰 입고 있으라는 건 말도 안 된다”고 꼬집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해당 문건이 회사의 공식 문서인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 관계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관세청은 조 회장 일가의 해외 물품 밀수와 그에 따른 관세 포탈 혐의에 대해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적용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조 회장 일가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질 수도 있다.
관세청 관계자는 이날 “압수수색 과정에서 작성한 조 회장 일가 보유 명품 목록 등을 개인 신용카드 사용 내역과 일일이 대조해가면서 분석하고 있다”며 “일단 일반관세 부과 시효인 5년 간의 신용카드 사용 내역을 조사하고 있지만 부정한 방법으로 관세를 포탈했을 땐 10년 간의 카드 내역을 조사할 수 있고, 수입 물품가액이 커질 경우 특가법을 적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세종=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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