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문재인 대통령과 마주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파격적이고 적극적이었다. 특히 ‘평화의집’ 방명록에 그가 적은 문구에서 ‘통 큰 의지’가 읽힌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깜짝 월경’을 제안하며 손을 덥석 잡은 장면을 보며 회담의 성공적인 결과를 낙관했다는 전문가도 있었다.
“새시대ㆍ평화 강조… 합의문에 ‘비핵화 의지’ 담길 가능성”
김 위원장이 적은 ‘새로운 력사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력사의 출발점에서’란 문장 중에서도 전문가들은 ‘평화의 시대’라는 대목에 주목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한 번에 ‘평화협정’까지 가지는 못해도 정전 질서를 끝내고 새로운 질서로 가자는 큰 그림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고 교수는 “이어진 좌담의 모두 발언을 봐도 김 위원장이 통 큰 결단을 하고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새로운 시대를 남북이 주도해 만들어가자’는 의지가 읽혔다”고 말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대결의 역사를 끝내고 한반도의 새 시대를 시작하는 의미인데, 이 역사를 남북한이 주도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뜻이 행간에 있다”는 것이다. 이어 “김 위원장은 한 발 나아가 ‘새로운 시대란 곧 평화의 시대’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했다”며 “단순한 말의 수사로 그치지 않겠다는 의지와 자신감을 담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합의문에 ‘비핵화 의지’가 들어갈 것”이라며 “만약 ‘(남북한과 미국이) 비핵화 협상을 시작한다’는 의미의 문구까지 들어간다면 최대치를 이룬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은, 문 대통령 국정목표 ‘평화와 번영’ 인용”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김 위원장이 모두 발언에서 쓴 ‘평화와 번영’이라는 표현에 주목했다. 문 대통령의 5대 국정목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는 출발선에서 신호탄을 쏜다는 마음가짐으로 왔다”고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의 국정목표를 차용해 일부러 이런 표현을 썼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김 교수는 “이미 남북의 정상이 사전 실무회담에서 (간접) 교감이 잘 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정상회담에서 상당히 진전된 결과물이 나올 것을 낙관했다.
그는 그러면서 “김 위원장의 발언 중 ‘평화’, ‘허심탄회’, ‘역사’라는 단어를 의미 있게 봐야 한다”며 “비핵화에 대해서도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해서 이를 출발점으로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자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잃어버린 11년’이라는 표현에도 무게를 뒀다. “보수정권 동안 잃어버린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2007년 10ㆍ4 남북공동선언의 적극적 계승 의지를 표명한 것”(김용현 교수), “남북관계의 터닝포인트를 만들어 보겠다는 전략적 표현”(남성욱 고려대 교수)이라는 것이다.
특히 남성욱 교수는 “말할 때 수치를 자주 쓰는 사람은 대게 논리적이고 계산에 능하다”며 “김 위원장이 통 큰 준비를 하고 나온 만큼 ‘남측도 할 도리를 하라’는 식의 요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 교수는 “이 때문에 합의문 마련에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밀착 수행 김여정, ‘왕실장’… 피는 물보다 진해”
전문가들은 앞서 공개된 남북 정상의 만남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는 ‘깜짝 월경’을 꼽았다. 고유환 교수는 “’내가 남측으로 내려왔으니 당신도 한번 북측 땅을 밟으시오’라는 김 위원장의 통치 스타일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고, 앞으로 이처럼 남북이 자유롭게 오가자는 의미를 담은 행동으로도 느껴졌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손을 덥석 잡은 장면에서 이미 회담의 모든 걸 보여줬다”며 “성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선량하고 유머 있는 보통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김 위원장의 전략적 행동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은 그간 고모부(장성택)과 이복형(김정남)을 죽인 잔혹한 권력자라는 이미지가 있었다”며 “국제사회에 지도자로 사실상 처음 등장하는 무대에서 이를 불식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남성욱 교수는 “나이로 볼 때 긴장 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며 “역시 ‘호랑이 새끼는 호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촌평했다.
김 위원장을 내내 지근거리에서 수행한 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도 눈길을 끌었다. 남 교수는 “역시 ‘왕실장 겸 브레인’이었다”며 “피는 물보다 진하고 면종복배(面從腹背ㆍ겉으로는 순종하는 척하고 속으로는 딴 마음을 먹는다)하는 관리들보다 내 여동생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날 잡힌 화면에서 김 위원장은 비교적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데도 숨을 몰아 쉬었다. 전문가들은 “방명록을 적을 때도 숨이 찬 듯 숨을 거칠게 내쉬어 건강이 좋지 않아 보였다”(박형중 선임연구위원), “걸으면서 숨을 헉헉거린 것을 빼면 여유로워 보였다”(남성욱 교수)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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