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은 시작에 불과
한국, 미국과 확고한 이인삼각 공조,
주변국과 협력으로 평화시대 열어야
불안감이 없지 않았다. 지난 금요일 아마도 모든 국민, 세계인들의 마음이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분단 73년을 넘어 성공적인 걸음을 내딛었다. 김 위원장 말처럼 “출발선에서 신호탄을 쏘는” 상황임은 분명하나, 작년 내내 한반도를 짓눌렀던 위기를 돌아보면 이번 정상회담이 만든 역사적 전환은 박수 받아 마땅하다.
‘4ㆍ27 판문점 선언’은 이전 남북 간 합의와 비교해 몇 가지 시사점을 가진다. 우선 국민 대다수의 공감대 위에 이뤄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가 회담을 구걸하지 않았고 북측도 터무니없는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북측 태도에서 과거와 달리 순간순간 진정성이 느껴졌다. 김 위원장도 자신에게 주어진 이 기회를 저버린다면 자신과 북한 주민들 앞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충분히 고려했으리라 믿는다.
남북 합의가 정권 초반에 이루어졌다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 2007년 10ㆍ4 선언은 대선을 코앞에 두고 이루어졌다. 더구나 각계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부는 국회 비준을 받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합의는 정부 초기에 이뤄진 만큼,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충분한 국회 논의를 거쳐 보다 강력한 추동력을 얻기를 희망한다. 사민당에서 기민당으로 정권이 바뀌면서도 대 동독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되었던 독일 통일 과정에 국회가 주목하기 바란다.
이번 회담이 한반도 주변에서 형성 중인 신냉전 구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과거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 내 ‘찻잔 속 미풍’ 수준이었다면, 이번 회담은 미중 간 대결, 한중일-북중러 신냉전 구도를 한순간에 흩어놓은 ‘국제적 태풍’이다. 그 바람이 어디까지 미칠지 아직 예상이 어려울 지경이다. 세계의 박수를 받은 남북 간 이벤트는 지난주로 만족하자. 우리가 진짜 한반도 운전자 역할을 하려면,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앞으로 예상되는 험난한 항로를 잘 헤쳐가기를 응원한다.
대북 정책은 문재인 정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7ㆍ4 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 6ㆍ15 공동선언과 10ㆍ4 정상선언까지 모든 것이 역사와 시대의 명령이었다. 이번 회담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평창 동계올림픽만 해도 보수 정권에서 성취한 결실이었다. 두 정상이 만나 지속적인 만남을 약속하고 비핵화의 결의를 다지기까지 앞서간 많은 지도자의 노력이 있었고, 거기에 하늘의 도움이 보태어졌음을 모두가 잊지 않았으면 한다.
남북 대화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한반도 문제는 국제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문제의 최종적인 해결은 미ㆍ중ㆍ일ㆍ러 등 주변국의 도움이 매우 중요하다. 6자든, 4자든 국제적 논의의 틀을 복원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로 보인다. ‘핵ㆍ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엄’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이 확인되면 국제적 대화틀을 즉시 가동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이러한 체계는 장기적으로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체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원래 의도가 무엇이었든 미국의 강력한 압박은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북미회담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과 미국이 이인삼각이 되어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의 청사진을 구체화해 나가기를 기대해본다. 사실, 북한이 원하는 것, 미국이 원하는 것, 그리고 대한민국이 원하는 것은 뚜렷해졌다. 남은 것은 방법론이다.
초등학교 교실에 며칠 만에 큰 변화가 생겼다. 통일을 바라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의사 출신인 필자는 종종 분단된 한반도를 반신불수 상태에 비유했다. 몸의 반을 쓸 수 없는 환자의 고통과 불편을 상상해 보면, 분단 70여 년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 세대의 업을 우리가 정리해야 한다. 험한 길이지만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이제 남북은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기필코 열어야 한다.
전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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