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화 내거나 폭력적 행동
한 가족 여러 명 진단 사례 많아
뇌에 문제가 있으면 약물치료
외부적 요인은 상담치료 받아야
일상에서 분노ㆍ불안 다스리려면
복식호흡ㆍ스스로 포옹 등 해 보길
“마치 조선시대 노비를 다루듯 했다. (이명희 대한항공 회장 부인은) 두 딸(조현아ㆍ조현민)에게도 욕설을 퍼부었다.” 조양호ㆍ이명희 대한항공 회장 부부의 갑질과 폭행을 직접 목격한 KAL호텔 직원은 이렇게 전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이들 가족처럼 화를 자주 내거나 흔히 ‘욱한다’고 표현되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폭력적인 행동을 밖으로 표출한다면 충동조절장애를 의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전전두엽의 힘이 약하면 짜증과 분노를 쉽게 억제하지 못하고, 조그마한 자극에도 쉽게 분노한다”고 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충동조절장애로 진료 받은 환자가 2017년 5,986명으로 집계됐다. 2015년 5,390명, 2016년 5,920명 등 매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남성이 83%(4,939명)로 여성보다 많았다. 연령별로는 20대 환자 29%, 30대 20%, 10대 19% 등 젊은 층에서 많았다. 40, 50대는 각각 12%, 8%였다.
간헐적 폭발성 장애, 유전 탓?
일반적으로 쓰이는 ‘분노조절장애’는 정신의학분야 정식진단명은 아니다. 충동조절장애는 분노 욕구에 의해 자신의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고 느닷없이 화를 내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증상이다. 분노조절장애로 잘 알려진 '간헐적 폭발성 장애'도 여기에 속한다. 습관적인 방화나 도벽도 충동장애로 분류된다.
김수정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간헐적 폭발성 장애가 한 가족에서 여러 명이 진단되는 경우가 많아 유전과 관련 있다는 주장도 있다”고 했다. 뇌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데 관여하는 변연계와 전두엽의 기능 장해가 관련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감소된 상태와 관련 있다고도 한다.
이밖에 뇌의 기질적 요인, 테스토스테론 등 호르몬 영향, 두부외상, 주의력 장애, 스트레스 등 다양한 원인이 상호작용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아동기에 알코올중독, 구타, 생명의 위협, 성적 문란 등을 많이 접하게 되는 환경에서 성장하면 간헐적 폭발성 장애가 흔하다.
김선미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술을 많이 마실수록 뇌의 기능이 떨어질 때나, 치매 등 퇴행성 뇌질환을 앓으면 충동조절장애가 올 수 있다”고 했다. 심리적으로는 공격적인 부모의 모습을 자신과 동일시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간헐적 폭발성 장애 환자는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지나칠 정도로 발작적이고 폭발적인 행동을 한다. 이런 발작적 증상은 몇 분 내지 몇 시간 지속되며 끝날 때는 신속히 끝난다. 환자는 공격적인 행동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충동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행동한 뒤 곧바로 후회나 자책을 한다.
가정 등에서 분노 조절 교육 필요
분노조절장애가 있다면 어떤 원인 때문에 발생했는지 본인 스스로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정영철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원인에 따라 치료법이 달라지는데 뇌에 문제가 있으면 약물치료가, 외부적인 요인 등으로 인해 발생했다면 상담치료가 각각 이뤄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분노조절장애를 예방하려면 어려서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갈등ㆍ분노 조절과 관련한 인성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자기 충동을 스스로 조절하는 법을 터득하고,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아이의 잘못에 적절한 훈육이 이뤄져야 올바른 인격을 형성할 수 있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스스로 분노 조절이 어렵다면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는 게 바람직하다"며 “정신과 치료라고 해서 결코 부끄럽거나, 떳떳하지 못할 일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했다.
홍 교수는 "자가진단을 통해 분노 조절이 조금 어려운 단계가 나왔다면 소리 내서 울기ㆍ편지 및 일기 쓰기 등으로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며 "눈물은 스트레스에 의한 카테콜아민을 배출해 안정을 주고, 분노할 때 감정을 글로 옮기면 감정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 통제력이 생긴다”고 했다.
음주 삼가고, ‘5초 호흡법’ 시행
충동조절장애는 유전ㆍ환경 등 원인이 다양하므로 병원상담을 받는 게 좋다. 특히 증상이 심하면 폭력ㆍ폭언 등으로 법적 문제까지 일으킬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일상에서 분노 대처요령도 알아두면 좋다. 가장 기본적인 대처요령은 호흡법이다. 5초간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5초간 내뱉는 복식호흡을 반복한다. 하지만 화가 많이 난 상태에서 갑자기 시도하면 도움이 별로 되지 않는다. 매일 10분씩 편안한 자세로 연습해야 한다. 5초가 버겁다면 3초 호흡부터 시작하면 된다.
또 화가 나거나 불안ㆍ초조한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면 눈 감은 채 손을 엇갈려 상체에 놓고 자신의 가슴이나 팔을 톡톡 두드리며 토닥인다. 이같은 ‘나비포옹법’은 현실을 인식하고 분노를 억누르는 데 좋다.
‘안전지대 상상법’도 있다. 나만의 안전지대, 즉 안전하고 편안한 풍경이나 장소를 정해 놓은 뒤 분노가 치밀면 자신이 거기에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존경하는 우상, 좋아하는 연예인 모습을 떠올리는 것도 마음진정에 도움이 된다. 마음 맞는 사람과 자주 만나 대화하고 공예ㆍ운동 같은 취미생활을 하는 것도 좋다. 단 음주는 분노나 울분통제에 매우 위험하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충동조절장애 자가 진단]
1.성격이 급하고 쉽게 흥분하며 금방 화를 낸다.
2.온라인상의 게임, 가상현실 속에서도 내 맘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난 적이 여러 번 있다.
3.분노를 조절하기 어렵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4.잘한 일을 칭찬받아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화가 난다.
5.다른 사람의 잘못을 꼭 집고 넘어가야 하며, 이로 인해 트러블이 생긴다.
6.화가 나면 주위의 물건을 집어 던진다.
7.다른 사람이나 나를 무시한다고 느끼고,억울한 감정이 자주 든다.
8.화를 조절하지 못해 중요한 일을 망친 적이 있다.
9.일이 잘 안 풀리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는 편이다.
[결과 분석]
1~3개: 어느 정도 충동 조절 가능
4~8개: 충동 조절이 조금 어려움
9~12개: 감정 조절이 어려워 전문의와 심리상담이 필요
<자료: 삼성서울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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