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전북 전주지방법원 앞에는 동물복지 농장주 20여명과 변호사들이 모인다. 전북 익산 동물복지 인증농장인 참사랑농장이 예방적 살처분 명령을 내린 익산시를 상대로 살처분 위법성을 따지기 위해 낸 본안 소송 판결이 1년 만에 나오기 때문이다. 이들은 “참사랑농장의 살처분을 막아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다.
지난해 3월 참사랑농장에서 2.1㎞ 떨어진 육계농장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면서 이 농장의 산란계(알 낳는 닭) 5,000마리가 살처분 대상에 포함됐다. 주변 농장 닭 85만 마리는 모두 살처분됐다. 하지만 농장주는 획일적 살처분에 반대하며 법원에 살처분 명령 집행정지 신청을 냈고, 그 사이 AI 최대 잠복기간이 지나고 예찰지역으로 전환되면서 지금까지 달걀을 출하해왔다. 이는 무차별적 살처분 정책이 능사가 아님을 보여준 사례가 됐다. 하지만 익산시는 살처분 명령은 정당했다며 이를 취소하지 않고 있다.
올해도 제2의 참사랑농장 사례가 나왔다. 지난 1월 경기 화성시의 한 농장은 34년간 유기농법으로 닭을 사육했다며 예방적 살처분에 반대했다. 농장주는 보상금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AI가 발생한 이후 살처분 해도 늦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앞서 익산 사례와 달리 화성시는 지리적 또는 역학적 특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방역실시 요령에 따라 명령이 아닌 권고를 택했고, 공무원들은 매일 간이검사를 하는 조건으로 발길을 돌렸다. 결국 해당 농장에서 AI가 발생하지 않으면서 3만 마리의 닭이 목숨을 건졌다.
획일적 살처분을 반대하는 농가와 환경단체, 동물보호단체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지만 정부의 방역대책은 살처분에만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살처분의 악순환을 가져올 뿐이다.
2008년 살처분 된 닭, 오리 등 가금류는 1,020만 마리에 달한 데 이어 2014~2015년에는 1,937만 마리로 늘었다. 2016년 11월~2017년 땅에 묻힌 가금류는 3,787만 마리, 산란계만 2,518만 마리에 달하면서 매년 역대 최대 피해 규모를 경신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체 산란계의 36%가 떼죽음을 당하면서 달걀 값은 폭등했고, 정부는 해외에서 병아리와 달걀을 수입해야 했다. 올해도 규모는 줄었지만 닭들은 살처분을 피할 수 없었다. 올해 AI 여파로 살처분 당한 닭은 지난 3월 중순 기준 581만1,000마리에 달한다.
그렇다면 올해는 가금류 살처분 수를 1,000만 마리 이하로 유지할 수 있을까. 올해도 닭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것 같다. 달걀 값이 하락하면서 양계협회가 55주령 이상 된 닭 850만 마리를 자율도태 시키기로 한 것이다. 올 가을과 겨울 AI로 인한 살처분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이대로라면 올해 살처분 되는 닭은 1,400만 마리를 넘어서게 된다. 결국 AI로 살처분 된 자리를 메운 닭들이 이번엔 가격 때문에 살처분 될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이미 병에 걸린 동물과 전염 가능성이 높은 동물들을 살처분하는 것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매년 살처분을 반복하는 데도 AI확산을 막지 못하는 가운데 살처분 명령 이행을 늦춘 농가에 보상금을 삭감하는 정책을 내놓는 것보단 살처분 기준이나 방식, 근본적인 사육환경 개선 등에 대한 점검과 검토가 우선이지 않을까.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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