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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마다 그들은 굶었다… YS부터 김성태까지 ‘단식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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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마다 그들은 굶었다… YS부터 김성태까지 ‘단식 잔혹사’

입력
2018.05.0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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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도 세월호 진상 요구하며 단식

“정치 의사 관철시키기 위한 최후 수단”

“협치와 거리 먼 행동” 평가는 엇갈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3일 국회 본청 앞에서 댓글공작 의혹에 대한 특검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시작 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3일 국회 본청 앞에서 댓글공작 의혹에 대한 특검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시작 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홍준표(왼쪽) 자유한국당 대표가 4일 오전 '드루킹'특검을 요구하며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농성 중인 김성태 원내대표를 찾아와 얘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준표(왼쪽) 자유한국당 대표가 4일 오전 '드루킹'특검을 요구하며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농성 중인 김성태 원내대표를 찾아와 얘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3일 민주당원 댓글조작 사건 관련 특검의 ‘무조건 수용’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국회 앞 ‘풍찬노숙’까지 자처하면서다.

김 원내대표의 단식 투쟁을 두고 여야의 평가는 팽팽히 갈렸다. 홍준표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그를 찾아가 “보통 어려운 결단이 아니고 보통 힘든 일도 아니다”라며 치켜세운 반면, 조배숙 민주평화당 대표는 “명분이 없으니 단식을 그만하라”고 촉구하는 등 혹평이 줄을 이었다.

단식의 족적은 우리 정치사 곳곳에 남아있다. 단식 농성 자체가 한국 정치권만의 독특한 문화란 평가도 있다. 단식은 정치적 의사를 관철시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택하는 최후의 수단이지만, 그 빛이 예전보다는 많이 바랬다. 협치와는 거리가 먼 행동이란 점에서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그러나 단식이 민주화 운동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3년 신군부가 자신의 정치활동을 금지시키고 가택 감금을 한 데 저항해 23일 간 단식 투쟁을 했다. 그의 단식이 일주일을 넘어가며 민주화 바람이 거세지자 전두환 정권은 김 전 대통령을 강제로 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병원에서도 단식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그는 가택연금 해제라는 결과를 얻었고, 그의 희생은 1987년 직선제 개헌으로까지 이어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단식 투쟁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다. 김 전 대통령은 평민당 총재였던 1990년 여당이 추진하던 내각제 반대, 지방자치제 실시를 내걸고 13일 간 단식 농성을 했다. 이는 이후 지방자치제가 도입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됐다.

민주화 이후 정치인의 단식은 정권의 정책에 대한 반대 투쟁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2007년 당시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원과 천정배 의원,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 등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단식 투쟁을 벌인 게 대표적이다. 당시 문성현 대표는 26일, 천정배 의원은 25일 간 단식 투쟁을 하며 김영삼ㆍ김대중 전 대통령이 갖고 있던 최장기간 단식 기록을 깼다.

2003년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최병렬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 비리에 대한 특검 도입을 촉구하며 단식 투쟁을 했던 일도 지금까지 회자된다. 최 대표는 17일 간 곡기를 끊었는데,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최 전 대표를 찾아가 “굶으면 죽는다”는 말을 남긴 일화는 아직도 유명하다.

2014년 8월 새정치연합 박영선(사진 오른쪽)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여야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이 참여하는 3자협의체 수용을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하던 중 단식 농성 중인 문재인 당시 의원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2014년 8월 새정치연합 박영선(사진 오른쪽)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여야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이 참여하는 3자협의체 수용을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하던 중 단식 농성 중인 문재인 당시 의원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문재인 대통령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이었던 2014년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26일 간 단식 투쟁을 벌였다. 문 대통령은 당시 광화문 광장에서 ‘유민 아빠’라 불리는 김영오씨 곁에서 동조 단식을 했다.

2016년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집권여당 대표 가운데는 최초로 단식 투쟁에 나서 화제에 올랐다. 지난해 10월에는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기간 연장을 반대하며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 투쟁을 했다. 하지만 여론은 무관심했고, 그는 결국 단식 14일째에 “새로운 저항과 투쟁의 길로 갈 것”이라며 중단을 선언했다. 역대 정치인 가운데 최장 단식 기록은 17대 국회 당시 현애자 전 의원이 갖고 있다. 민주노동당 소속이었던 현 전 의원은 2007년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며 27일간 단식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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