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가상현실(VR)과 관련된 기술 발전 속도가 실로 무섭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소프트웨어가 인류 최고의 바둑기사를 이겼다는 사실은 이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언젠가 인간 바둑기사가 인공지능을 이기는 날이 오면 매우 놀라운 뉴스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그 날은 오지 않을 것 같다.
우버의 자율주행 자동차가 일으킨 교통사고가 관심과 논란의 대상이 됐지만, 기술 발전의 흐름을 되돌리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그 사고 소식이 그만큼 뉴스거리가 됐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관련 기술이 완성 경지에 매우 가까워졌음을 일깨우는 방증이다. 이미 확률적으로는 인간이 직접 운전할 때의 사고 위험이 훨씬 높다. 자율주행은 그 사고의 책임을 누구에게 귀속시킬 지에 대해 규범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뿐이다. 중국에서는 CCTV에 촬영되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인식하고 그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의 사회적 평가를 점수화하는 기술이 곧 상용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문명사회에서 인간 노동의 의미와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놓고 첨예한 철학적 논쟁이 진행된 바 있다. 노동은 자본과 함께 재화를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으로서 생산요소의 하나라고 보는 입장이 있는가하면, 노동은 인간의 존엄한 가치 그 자체가 사회적으로 발현되는 형태이므로 노동으로 창출되는 결과에 대해서는 인간의 존엄 그것에 상응하는 천부적 권리가 부여되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현실적으로 현대사회에서 노동은 인간 생존에 필요한 가치 있는 것을 얻기 위한 교환적 거래의 매개이다. 넓은 의미에서는 예술적 창작행위, 또는 정치적 행위들도 일종의 직업으로서 노동행위다. 인간은 육체적 혹은 지적 노동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고 그 대가로 받는 급여를 통해 자신과 가족들의 생계를 해결한다. 그 해결이 종족과 유전자의 보전으로까지 이어진다.
고도로 발달된 인공지능 사회에서 인간 노동은 과연 어떤 가치를 갖게 될까. 대부분의 육체적ㆍ지적 노동은 로봇과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것이고 현존하는 많은 직업들이 사라질 것이다. 제조업은 물론 교육, 의학, 법률, 예술 등 서비스업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그 때에도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 통제 하에 있다면 그것을 통제하는 것이 주된 인간 직업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어쩌면 그 미래에 지구 한켠은 핵전쟁의 참화로 폐허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보전된 지구 영역에서 살고 있는 대부분의 인류는 노동 가치의 징표인 직업을 갖지 못한 채 살고 있을 것이다. 기술 발전과 새로운 생산시스템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해도, 최소한 인간 생존에 필요한 물적 조건들을 충족시켜 줄 것이다.
그와 같은 세상에서 인류는 무엇으로부터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고, 무엇을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할 것인가.
장담할 수는 없으나 아마 가상현실 속 새로운 자아가 현실 속 자아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고, 그 가상현실에서 가치있는 것으로 설정된 게임의 규칙 속에서 경쟁할 것이다. 그 무렵이면 현실 화폐보다 가상화폐가 더 중요한 거래 수단이 될 수도 있겠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만큼 무서운, 또는 흥미진진한 먼 미래의 모습이겠으나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기술발전이 그와 같은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결국 그 미래의 모습과 그 속에서 노동의 가치를 포함한 새 규칙을 정하는 것은 지금 현재 공동체 구성원들의 순간순간 규범적 합의이다. 기술의 개발만큼이나 그 기술이 가져올 변화 속에서 우리에게 규범적으로 또는 존재론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으면 인간은 결국 가상현실 속에서나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는 한없이 가여운 존재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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