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 산오징어 먹어봤나? 산오징어. 대학 신입생 시절에, 각지에서 모인 동기들이 저마다 제 도시를 우쭐대며, 가봤느니 못 가봤느니 최고라느니 별 거 아니라느니 할 때, 가만히 듣고만 앉았던 속초 출신 친구가 슬그머니 던진 물음. 강원도 사투리도 정겨웁게. 먹어는 봤나 산오징어? 바짝 마른 오징어 물에 불려 튀김 해 먹던 시절이니, 먹어보기는커녕 산에 오징어가 산다는 말로 들렸다. 지금이야 산오징어는 물론이고 고등어야 뭐야 수족관에 넘쳐나지만, 그때만 해도 살아 있는 오징어는 구경도 못 해봤었다.
다음해인가 속초에 가서 산오징어부터 찾았다. 참말로 달고 맛있었다. 씹지 않아도 쫄깃하고 혀를 굴리지 않아도 단맛이 감돌았다. 그저 달다, 아 달다, 쌈빡하게 달다, 두고두고 달다. 풋사랑의 맛이었다.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치게 좋은 맛. 어쩌면 속초 출신의 그 동기녀석을 남몰래 흠모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랑하게 되었다. 오징어 비슷하게 생긴 모든 것들을. 다리가 짧은 한치며 내장까지 먹는 총알오징어며 호로록 호래기인지 꼴값하는 꼴뚜기인지 그 이름이 무엇이든 다 좋았다. 언제 어디서든 풋사랑의 맛, 첫사랑의 맛을 볼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술기운이 거나해지면, 마지막으로 산오징어에 소주 한잔, 외치며 사람들을 붙잡는 버릇은 언제부터 생긴 것인지. 비틀거리며 그 늦은 밤길을 헤매 이윽고 도착한 산오징어 집은 ‘나도 몰래 발길이 머물고 오히려 눈에 띌까 다시 걸어도 되오면 그 자리에 다시 서’게 되는 바로 그 집. 산오징어가 그리웠던 것인지, 그에 따라오는 소주가 고팠던 것인지, 아니면 그 조합이 불러일으키는 달달한 청춘의 뒷맛을 맛보고 싶었던 것인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형 횟집에서 산오징어 한 접시를 시켰더니, 산오징어 껍질을 기계로 스윽 밀어버린 다음, 채 써는 기계에 넣어 단박에 잘라 접시에 올리는 것이 아닌가. 흔하디 흔한 오징어라지만, 껍질은 갈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벗겨내야 하며, 살은 잘 벼린 칼로 리드미컬하고 규칙적으로 착착착 정갈하게 썰어야 하는 법인데. 산오징어를 저렇게 함부로 하다니. 어쩐지 내 숨은 짝사랑이 훼손당하고 내동댕이쳐진 느낌이 들었다. 최상의 맛을 보기 위한 까다로운 투정이 결코 아니었다. 씁쓸한 슬픔이 몰려왔다. 채 잘리지 않아 길게 이어 붙은 오징어 조각을 입에 욱여 넣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꽤 늙어버렸다는 것을. 밤기차를 타고 도착해 주머니를 탈탈 털어 산오징어 한 마리를 사 먹고 돌아오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홍원항에서 연락이 왔다. 갑오징어 배가 들어왔다고. 올해는 유난히 크고 실한 것들이 가득이라고. 반가운 소식이었다. 겨우내 기다렸다. 갑오징어를. 산란기를 맞은 4월에서 6월. 갑오징어는 최상의 맛을 품고 있다. 그래서 이시기에 급속 냉동해 두고두고 먹는다. 항구에서 곧바로 올려 보낸 몇 상자의 갑오징어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배를 가르고 뼈를 빼내고 내장을 꺼내고. 내 어머니는 갑오징어 손질을 할 때마다 매번, 갑오징어는 미나리랑 찰떡궁합인데, 라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또 전생에 내가 갑오징어였나 이렇게 많은 갑오징어 껍질을 벗기게 될 줄이야, 라는 말도 한다. 그러면 나는 아무래도 엄마가 전생에 미나리였던 것 같다고 대꾸한다. 엄마가 갑오징어 뼈를 칼처럼 손에 쥐고 위협하는 제스처를 취하면, 나도 하나 집어 들고 챙챙챙 어린애처럼 칼놀이를 한다. 그러는 동안 내 입에서는 그 오래 전 산오징어의 단맛과 어느 밤거리의 쓴 소주 맛이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오가며 되오며 제자리로 사랑해와 미안해 사이를.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