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정보를 소개하는 인터넷사이트 ‘패스포트 인덱스’는 매년 각국 여권 순위를 매긴다. 얼마나 자유롭게 다른 나라를 다닐 수 있는지 평가한 여권의 ‘파워’ 순위다. 2018년 1위는 무비자나 도착비자로 해외 여행 가능한 나라가 164개국에 이르는 싱가포르이고 이어 2위가 한국(163개국)이다. 일본은 물론 독일 덴마크 스웨덴 등 서유럽 어떤 나라보다 한국 여권이 세계를 다니기 더 편하다는 이야기다.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진 지 채 30년도 안 된다는 나라라는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마저 든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발표한 ‘공공디자인 진흥 종합계획’에서 여행자유화 시행 직전 채택해 써온 현 초록색 여권 표지를 파란색으로 바꿀 계획이라고 밝혔다. 2007년 공모전에서 최우수상 받은 두 가지 안 가운데 밝은 청색인 김수정 서울대교수 디자인을 토대로 최종안을 개발해 차세대 전자여권이 도입되는 2020년부터 사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외교부는 지금 여권이 초록인 이유를 눈에 잘 띄지 않는 무난한 색으로 도난 피해를 줄이려던 것이라고 설명한다. 초록 중에서도 ‘국방색’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색깔임을 감안하면 당시 정치사회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여권 색깔은 나라마다 제각각이지만 몇 가지 룰 아닌 룰도 있다. 먼저 총천연색이 아니다. ‘패스포트 인덱스’는 파랑 빨강 초록 검정 4가지로 세계 모든 여권을 분류한다. 파랑색 계열이 78개국으로 가장 많고, 빨강 67개국, 초록 43개국, 검정 10개국이다. 경제 관계가 밀접한 지역별로 비슷한 색을 쓰는 경향도 있다. 빨강 계열의 유럽연합과 남미 태평양 연안국이 대표적이다. 남북미와 호주 등 이른바 신세계는 파랑, 아프리카 동부(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는 초록을 선호한다. 러시아 중국이 빨강, 사우디아라비아 인도네시아 이집트 등이 초록이어서 공산주의 국가는 빨강, 이슬람은 초록이라는 이미지도 있다.
▦초록인 한국도, 남색인 북한 여권도 이런 경향에서는 벗어난다. 새로 나올 여권은 초안을 유지한다면 북한 여권보다는 밝은 색이고, 디자인은 전혀 다르지만 같은 파랑 계열이다 보니 남북 여권 통일이냐는 말까지 나온다. 10년 가까이 보수 정권에서 뒷걸음질치기만 했던 남북관계가 전기를 맞고, 북한이 남쪽 상공을 지나는 항공로를 열어주도록 국제기구에 신청한 시점에 온 변화가 공교롭기만 하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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