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지에 연구결과 게재
2006년 10월 지구에서 단 한 마리 남았던 랩스 청개구리 ‘터피’가 사망했다. 갈색 피부에 몸집도 다소 큰 청개구리종(種)인 랩스 청개구리는 터피의 죽음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랩스 청개구리의 멸종을 불러온 장본인은 항아리곰팡이(Bd)다.
1993년 호주에서 처음 발견된 항아리곰팡이는 양서류에게 치명적이다. 포자가 항아리처럼 생겨 이름 붙은 이 곰팡이는 양서류 피부에 기생하며 케라틴을 먹고 산다. 케라틴은 양서류 피부 가장 바깥쪽을 구성, 피부 안쪽 세포들을 보호하는 조직이다. 피부호흡을 하는 양서류가 케라틴을 잃으면 질식해 죽는다. 20여년 동안 전 세계에서 200종이 넘는 양서류가 항아리곰팡이로 인해 멸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나마 터피는 서식지인 중남미 산악지역에 항아리곰팡이가 퍼지기 전인 2005년 미국 애틀란타 식물원으로 옮겨져 괴사를 피할 수 있었다. 나머지 랩스 개구리는 2006년 항아리곰팡이가 확산하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양서류의 흑사병’이란 별명까지 갖게 된 항아리곰팡이는 어디서 유래했을까.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11일자에 실린 국제공동연구진의 연구결과는 놀랍게도 한국을 지목했다. 한국에서만 발견된 항아리곰팡이가 해외로 퍼지면서 여러 변이가 일어났고, 해당 곰팡이에 대한 면역체계를 갖추지 못한 현지 양서류의 대규모 괴사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 널리 분포한 항아리곰팡이는 검출된 지역에 따라 아시아(BdASIA), 브라질(BdBRAZIL), 아프리카(BdCAPE), 전 세계(BdGPL)로 크게 구분한다.
연구진은 브라질ㆍ아프리카ㆍ전 세계에서 분포하는 항아리곰팡이와 한국 무당개구리에서만 발견된 항아리곰팡이(BdASIA-1) 등 네 종, 234개체의 염기서열을 분석해 단일염기변이(SNP)가 나타난 위치와 개수를 비교했다. 유전자 염기서열은 4개 염기 중 아데닌(A)과 티민(T), 구아닌(G)과 시토신(C)이 짝을 이루고 있다. 그중 한 개가 다른 염기로 뒤바뀌는 돌연변이를 SNP라고 한다.
연구에 참여한 브루스 월드만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BdASIA-1은 다른 곰팡이에서 나타난 SNP 대부분을 갖고 있는 데다, SNP 숫자(32만7,996개)도 다른 곰팡이(12만7,770개~14만8,021개)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고 말했다. SNP 위치가 겹친다는 건 BdASIA-1과 다른 세 곰팡이가 같은 계통이란 뜻이다. 김대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인류가 기원한 아프리카의 사람들이 다른 대륙 사람들보다 SNP 개수가 많고 유전적 다양성이 큰 것처럼, 전 세계 곳곳에서 양서류 떼죽음을 몰고 온 항아리곰팡이가 한국 고유종에서 유래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1950년대부터 해외 교역이나 군수 물자 수송을 통해 한국 고유의 항아리곰팡이가 전 세계로 확산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면서 “애완동물 거래는 전 세계에 병원균을 전파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라고 우려했다. 월드만 교수도 “동물 국제거래로 곰팡이ㆍ병원균이 빠르게 퍼지면서 대규모 동물 폐사를 일으키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곰팡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가 이미 외래종의 침입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2012년 미국에선 외래종으로 인한 농업 피해가 130억 달러(약 14조원)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도 외래종은 2009년 894종에서 2016년 2,208종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그 중에서 생태계에 막심한 피해를 주는 생태계 교란생물은 뉴트리아, 황소개구리, 붉은귀거북, 파랑볼우럭(블루길), 큰입배스, 꽃매미, 붉은불개미 등 21종이다.
이들 동식물은 인위적으로 한국에 오게 된 경우가 대다수다. 황소개구리와 큰입배스, 뉴트리아 모두 식용 목적으로 수입됐다. 터피의 죽음은 물론, 한국 고유 생태계 파괴에서도 사람들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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