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산업 불법 보조금 판결 임박
美 승소 땐 EU에 보복관세 가능성
외교 관계 악화 상황서 결과 주목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유럽 간 무역전쟁 위험이 커지는 가운데 항공산업 보조금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의 해묵은 갈등이 또다시 수면 위로 부상할 조짐이다.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에서 패소하고도 후속 절차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국이 유럽연합(EU)을 WTO 상소 기구에 제소한 사건에 대한 결정이 15일 이전에 나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WTO가 미국 손을 들어줄 경우 최소 70억(7조5,000억원), 최대 100억달러에 달하는 관세폭탄을 EU에 부과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이 폭탄은 항공기나 항공부품 이외의 상품과 서비스에도 물릴 수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WTO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복잡한 분쟁인 미국(보잉)과 EU(에어버스)의 보조금 분쟁이 14년 간 끌어 오면서 대중적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미국의 이란 핵협정(JCPOA) 탈퇴와 관세 갈등으로 양측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이번 판결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고 전했다. WSJ는 미국이 승소할 경우 미국은 매년 수십억 달러의 보복관세를 매길 것으로 전망했다.
보잉과 에어버스 간 갈등의 역사는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어버스의 경쟁사인 미국 보잉과 미 무역대표부는 2004년 프랑스, 영국, 독일, 스페인 정부가 에어버스 항공기 A380 개발에 불법적으로 220억달러를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거듭되는 맞제소와 항소 끝에 WTO는 최종적으로 EU의 항공 보조금이 미국 기업에 손해를 입혔다고 판정했다.
WTO에 제소하는 것은 통상 실익 없는 지루한 공방으로 여겨지곤 하지만 이번에 WTO가 미국 손을 들어 주면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에 힘을 실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미국의 한 전직 외교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의 지렛대로 삼는 철강 관세와 달리 이번 판결에 따른 보복관세는 실질적인 대 EU 압박수단이 될 것”이라고 WSJ에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을 벼르고 있는 만큼 보잉과 에어버스의 보조금 싸움이 결국 미국과 유럽의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WSJ는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 시절인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에 지지 입장을 표명하고, 지난해 6월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를 공식화하면서 이미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철강 고율 관세 부과 이전부터 악화일로를 걸어왔다고 덧붙였다.
특히 보잉은 대통령 전용기 ‘에어 포스 원’ 가격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을 받은 후 트럼프 행정부 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왔다. 이에 에어버스의 최고경영자(CEO) 톰 엔더스는 올해 초 “미국 정부는 더 이상 자유무역을 위해 싸우지 않으며 보잉은 ‘미국 우선주의’의 파도에 올라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보잉에 유리하게 나온다고 해도 보잉의 최종적 승리로 보기는 아직 이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에어버스와 EU도 보잉이 미 국방부와 항공우주국(NASA)로부터 부당한 지원을 받고 있다고 맞고소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EU는 보잉이 여객기 777X를 개발하면서 워싱턴주의 법인세 감면 프로그램으로 87억달러 상당의 불법적 혜택을 받았다고 주장했고, WTO는 EU의 손을 들어 줬다. EU 역시 미국이 관련 조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워싱턴주를 상소 기구에 제소한 상태다. 관련 판결은 연내에 나올 예정이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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