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들 서주석 차관 사퇴 집회에
참배 예정 시각 20분 지나 ‘없던 일’
시위 현장 지나 참배 부담된 듯
광주송정역 도착 후 역사에 머물러
5월단체장 역장실로 불러 면담만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14일 국립 5ㆍ18민주묘지 참배를 위해 광주를 방문했으나 돌연 ‘군 사기’ 문제 등을 들어 참배를 취소했다. 이날 오전 5ㆍ18유족 등 10여명이 5ㆍ18민주묘지 내에서 5ㆍ18왜곡 조직에 참여했던 서주석 국방부 차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자 이를 의식한 것이다. 그러나 “국방부가 5ㆍ18진상규명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하기 위해 참배를 하겠다”던 송 장관이 외려 유족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행동을 보이자 유족들은 “송 장관이 국방부를 더 믿을 수 없게 했다”고 비판했다.
송 장관은 이날 5ㆍ18묘역 참배 예정시간이 20분 지난 뒤인 오전 10시30분쯤 갑자기 참배 계획을 취소했다. 송 장관은 묘지 입구에서 대기 중이던 김택 국방부 공보담당(중령)을 통해 “5ㆍ18희생자들에게 예를 표하고, 5ㆍ18진상규명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하기 위배 참배하려고 했으나, 5ㆍ18묘지 현장에서 참배 목적이 변질될 상황이 돼 부득이 참배를 취소했다”고 밝혔다.
송 장관은 이날 KTX편으로 광주를 내려오던 중 5ㆍ18묘지 내 민주의 문 앞에서 오월어머니집 회원 등 10여명이 서 차관에 대한 해임을 촉구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상태였다. 송 장관은 오전 9시37분 광주송정역에 도착한 뒤 역사를 빠져 나오지도 않았고, 50여분 뒤 참배 취소를 결정했다. 이 때문에 송 장관은 묘지 참배 후 현장에서 진행하려던 5월 3단체(유족회ㆍ부상자회ㆍ구속부상자회) 등과의 면담도 광주송정역 역장실에서 열었다. 이 자리에서 송 장관은 “(서 차관 사퇴 및 해임을 촉구하는)플래카드하고 이런 것(집회)은 국민들한테 비춰질 때, 군 사기도 있지 않느냐. 여러 가지 고려할 때 다 상의하고 행동하지, 제 기분 내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고 참배 취소 이유를 밝혔다. 군의 수장인 국방부 장관이 서 차관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 현장을 지나 참배하러 가는 모습이 군 사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송 장관은 그러면서 “이달 말 안에 국방부 버스를 내줄 테니, 5월 단체장과 오월어머니들 다 오셔서 하고 싶은 얘기 다 해달라”며 “그런 뒤 내가 (다시 참배하러) 내려올 때는 플래카드 시위 이렇게 하지 말고 같이 참배하고 화합하자”고 말했다. 송 장관은 이어 “서 차관이 그 자리에 있으면 9월 출범할 5ㆍ18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에 방해될 것이라는 5월 단체 등의 염려가 있지만, 제가 장관으로 있는 한 그런 염려는 안 해도 된다”고 덧붙였다.
서 차관은 1988년 한국국방연구원 소속 연구원일 때 국방부의 국회 5ㆍ18 청문회 대책특위인 ‘511연구위원회’에 참여했다. 송 장관은 또 5월단체장들에게 5ㆍ18 당시 계엄군에 의한 성폭행 의혹을 여성가족부와 협의해 조사하고, 국군 창설 이후 국방부나 국군이 허위사실을 담아 발간한 책들을 역사 바로잡기 차원에서 잘못된 것이라고 해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대해 5ㆍ18유족 추모(62)씨는 “송 장관이 진심으로 5ㆍ18진실규명에 노력할 생각이었다면 집회에 참석한 오월어머니들을 설득시켜 같이 참배했어야 한다”며 “송 장관의 돌발행동으로 진실규명을 하겠다는 국방부를 더 믿을 수 없게 됐다”고 꼬집었다.
광주=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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