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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사건 2년… 여성노린 강력범죄 늘고 '여혐'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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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사건 2년… 여성노린 강력범죄 늘고 '여혐' 여전

입력
2018.05.16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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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여성 대상 강력범죄 3만건 넘어서…"안전해지기는커녕 더 불안"

여성권 논의 커졌지만 남성 반발도 거세…17일 '검은옷' 추모집회 개최

한국일보가 '강남역 살인사건 1주기'를 앞두고 지난 12일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차린 부스에서 시민들이 우리 사회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의식을 포스트잇에 자유롭게 담고 있다. 류효진기자
한국일보가 '강남역 살인사건 1주기'를 앞두고 지난 12일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차린 부스에서 시민들이 우리 사회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의식을 포스트잇에 자유롭게 담고 있다. 류효진기자

"여자들이 공중화장실 들어가면 뭐부터 하는 줄 아세요? 벽에 작은 구멍 있는지 찾아서, 있으면 휴지를 돌돌 말아서 막아요. '몰카' 있을까 봐 그런 거죠. 강남역 살인사건이요? 이후로 바뀐 게 뭔데요?"

2016년 서울 최대 번화가인 강남역 유흥가 한복판의 공중화장실에서 20대 초반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했던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이 17일 2주기를 맞는다.

사회학계는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여성들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misogyny·여성을 남성과 다르게 대상화·차별하는 모든 언어·행동)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해 이후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까지 이어졌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여성을 상대로 한 차별과 폭력은 여전하며 여성들이 가까스로 용기를 내기 시작한 목소리도 남성들의 '백래시(backlash·반격)'에 묻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이 피해자였던 강력범죄(살인·성폭력)는 총 3만270건으로, 2016년 2만7천431건보다 10%가량 늘어났다.

강남역 사건이 일어났던 2016년에도 여성대상 강력범죄는 상반기 1만2천185건에서 하반기 1만5천246건으로 증가했다.

2016년 5월 강남역 한복판에서 여성을 살해한 범인이 "여성을 기다렸다가 범행했다"고 진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성 안전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했지만, 여성대상 범죄는 되레 늘어난 것이다.

치안 당국은 강남역 사건 이후 여성대상 범죄를 엄단하고 있다고 거듭 밝혀왔다. 그러나 여성들은 진정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체감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직장인 황모(31·여)씨는 "남자들은 모를 텐데, 공중 여자화장실에서는 벽에 작은 구멍이 뚫려있고 누군가 그걸 휴지로 막아놓은 모습을 일상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면서 "강남역 사건 이후에 더 안전해지기는커녕 불안감만 더 커진 것 같다"고 토로했다.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여성 안전과 여성혐오에 대한 논의가 확대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지만 곪아있던 '고름'이 터지며 밖으로 흘러나오듯 그동안 잠재돼 있던 여성혐오가 더 많이 밖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직장인 백모(29·여)씨는 "'왜 화장 안 하느냐, 예의를 갖춰라' 등 여성혐오적 발언을 하던 직장 상사들은 미투 운동 이후에도 '이것도 미투인가? 하하'라며 조심스러워하는 척 여성혐오를 계속하고 있다"면서 "오히려 잘못됐다고 지적하면 '깐깐한 여자' 이미지를 얻게 된다"고 지적했다.

미투 운동 등을 거치면서 성폭력 범죄는 물론 외모 평가처럼 사소해 보이는 여성차별 발언도 잘못된 여성혐오라는 사실을 남녀 모두 인식하게 됐음에도,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여성들은 공격 대상이 되는 것이다.

한국여성민우회가 지난달 6∼13일 페미니즘 발언·행동에 대한 백래시 사례를 수집한 결과 일주일 만에 사례 182건이 제보됐다.

1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서 지난 5월 17일 벌어졌던 ‘강남역 묻지 마 살인사건’의 희생양이 된 여성을 추모하는 쪽지들을 모아놓은 '여성 기억의 길'을 여성가족재단을 찾은 모자가 둘러보고 있다. 신재훈 인턴기자 (세종대 광전자공학과 4)
1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서 지난 5월 17일 벌어졌던 ‘강남역 묻지 마 살인사건’의 희생양이 된 여성을 추모하는 쪽지들을 모아놓은 '여성 기억의 길'을 여성가족재단을 찾은 모자가 둘러보고 있다. 신재훈 인턴기자 (세종대 광전자공학과 4)

여성들은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말을 하거나 SNS 등에서 페미니즘에 지지 의사를 밝혔다는 이유로 욕설·폭언을 듣거나 조직 내에서 낙인이 찍혔다고 털어놨다. 페미니즘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잘렸다는 제보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서구의 18∼19세기 여성 참정권 운동이나 1960∼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 등 모든 여성권 신장 운동은 '백래시'를 피하지 못했다면서, 우리 사회가 기존에 쓰고 있던 남성중심주의라는 껍데기를 깨고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백래시를 극복하지 못하고 페미니즘 암흑기로 돌아가게 되면, 주류 남성사회는 미투 등으로 인해 여성이 얼마나 분노할 수 있는지 목격했기 때문에 남성권력 구조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이 분노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여성은 남성의 폭력으로 인해 일상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스스로 '페미니스트'를 천명한 대통령과 정부 차원에서 여성혐오 문제를 해결하고 성평등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6년 여성살해 사건 당시 강남역에 모여 접착식메모지(포스트잇) 수만 장을 붙였던 여성들은 사건 2주기인 17일 저녁 신논현역에서 검은 옷을 입고 추모집회를 연다.

강남역 포스트잇에 "나는 (운 좋게) 살아남았다"고 적었던 이들은 이날 집회에서는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라고 외칠 계획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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