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리비아 모델 적용 부인
김정은 집권보장, 경제지원 공언
“시진핑과 2번째 회담 후 北 돌변”
중국에 대한 불만 노골적 표출도
“김정은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게임을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판돈을 잃은 것은 없다.”
북한이 돌연 북미 정상회담 재고를 경고하며 미국의 허를 찌른 것을 두고 미국 시사잡지 애틀랜틱지가 이렇게 평가했다.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미중간 경쟁 구도를 파고 들어 몸값을 높이는 북한의 고위험도 협상술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북한은 전격적인 북미 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 등으로 한미와 밀착하는 모습을 보여 중국을 긴장시킨 데 이어,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꿔 중국을 지렛대 삼아 한미를 당혹케 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켜 나가고 있다. 미중 패권구도가 북한 비핵화 구도를 근본에서 흔들고, 북한이 이를 최대한 유리하게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북한이 강하게 거부한 ‘리비아 모델’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모델이 전혀 아니다”며 한발 물러서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집권 보장과 경제 지원을 공언하며 북한 달래기에 나선 것이 승부수가 먹혀 들고 있다는 방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완전 초토화’(total decimation)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우리가 합의를 하지 못하면 북한이 (완전 초토화된) 리비아 모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긴 했으나, 역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역사적 업적을 열망해 왔던 트럼프 대통령의 초조감으로도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돌변을 두고 ‘시진핑(習近平) 배후론’을 꺼내며 북한을 둘러싼 중국과의 경쟁 의식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이 시 주석과 두 번째 회담을 한 이후 큰 변화가 있었다”면서 “시 주석이 김정은에게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중국의 개입 가능성을 여러 차례 거론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도 북한이 돌변한 것을 두고 '중국 변수'가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중국 보험’으로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는 북한과 미국과의 무역 분쟁에서 북한을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북한이 느닷없이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문제 삼은 것도 중국의 입장을 수용해 중국의 대미 레버리지를 높여준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처럼 북중이 연대 조짐을 보이면서 미국이 바짝 긴장하는 국면이 됐지만, 한 달여 전만 해도 중국이 ‘차이나 패싱’을 우려하며 북한을 달래는 상황이었다. 북한이 두 차례의 북중 정상회담에 나섰을 당시 제기됐던 몸값 높이기 전략이란 분석이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북한의 미중 줄타기 움직임은 미국 강경파가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과 중국 모두를 흔드는 전략이 북한으로서는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리비아 모델’을 거론하며 지나치게 압박해 북한이 중국에 손을 내밀게 됐다는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애초 남북미 3자 구도로 가는 그림이었으나, 볼턴 보좌관의 강경 발언으로 북한이 중국에 붙게 됐고 결과적으로 중국이 조기에 발언권을 얻어 상황이 어렵게 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남북미 3자 구도 대신 한미중이 공동 전선을 먼저 구축한 후에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 나서야 했지만 한미가 중국을 소홀히 하면서 틈을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결과적으로 북한이 미중간 경쟁 틈새를 파고들면서 비핵화 협상이 더욱 복잡하고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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