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회장 “이 술로 우승 건배”
1994년 스프링캠프 회식 때부터
승리의 상징된 日 아와모리 소주
챔피언스파크 사료실에 덩그러니
애정 남달랐던 ‘야구 회장님’ 추모
LG 선수들 검은 리본 달고 경기
LG가 지난 2014년 문을 연 경기 이천 챔피언스파크에는 야구단의 역사를 한 눈에 돌아볼 수 있는 사료실이 있다. 전신인 MBC 청룡 시절의 낡은 입장 티켓부터 빛 바랜 언론 자료까지 야구단의 흔적을 한 눈에 돌아볼 수 잇는 LG 박물관이다. 그 중에서도 출입구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커다란 항아리가 눈에 띈다. 그 유명한 LG의 ‘우승 축배주’로, 일본 오키나와산 특산 소주인 ‘아와모리’다. 누룩만으로 증류해 만든 알코올 도수 35도 이상의 독주다. 1994년 봄, 선수단 격려차 오키나와 스프링캠프를 찾은 구본무 LG그룹 회장(당시 구단주)이 선수단 회식 자리에서 이 술을 나누어 마시다가 “올 시즌 우승하면 축승회 때 이 술로 건배합시다”라고 제의했다. LG 구단은 귀국길에 아와모리를 여러 통 사 들고 들어왔고, 그 해 가을 창단 두 번째 우승을 한 자리에서 기분 좋게 술잔을 채웠다. 기분 좋은 징크스로 여긴 LG 구단은 이듬해 전지훈련을 마친 뒤에도 이 술을 다시 사 들고 귀국했다. 그러나 지난해까지 23년간 열리지 않는 술이 바로 이 곳으로 자리를 옮긴 그 때 그 아와모리다. 흘러간 세월만큼 술독을 봉해 놓은 종이 색깔은 누렇게 변색됐다.
구 회장은 끝내 그 술을 열어보지 못하고 20일 눈을 감았다. 1998년 해외 출장 때 구매해 한국시리즈 MVP에게 주겠다던 8,000만원 짜리 롤렉스 시계도 아직 잠자고 있다. 고인은 야구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LG는 잘 알려진 대로 1990년 창단한 야구단의 인기를 발판 삼아 두 차례 우승(1990년ㆍ1994년) 후 1995년 그룹 CI를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꿀 만큼 야구를 통해 이미지 제고에 성공한 기업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구 회장을 비롯한 야구단 식구 전원이 1년에 한 번 한 자리에 모이는 ‘단목행사’도 구 회장이 직접 제안한 구단의 전통이었다. 구 회장의 생가이자 외가가 있는 경남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에서 지내는 우승 기원 행사였다.
지난 2000년에는 오키나와 전지훈련 캠프에까지 날아가 선수단 회식을 주재하며 “한국시리즈에서 우승만 한다면 백지수표를 풀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야구단에 뜨거운 애정을 표현하며 적극적으로 구단을 챙겼다. 2008년부터 동생 구본준 부회장에게 구단주 자리를 물려줬지만 최근까지도 구 회장은 코칭스태프 회식을 가끔 주선했고, 2013년 정규시즌 2위로 11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일궜던 김기태(현 KIA) 감독에게는 작지만 각별한 선물을 따로 챙겨주기도 했다. 20일 잠실 한화전에서 왼 팔에 검은 리본을 달고 경기에 임한 LG 선수들에게는 잊지 못할 ‘야구 회장님’이었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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