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1만여명 규탄 시위 참가
인터넷엔 폭력적 게시물 넘쳐
‘2차 시위할 때 몰카남한테 황산 테러 할 거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끝나고 몇 시간이 지난 뒤인 20일 0시30분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에 올라온 게시물이다. 작성자는 ‘시위 때 몰카 찍을 담력이면 황산도 시원하게 꿀꺽꿀꺽할 정도의 남자다움은 갖추고 있단 뜻 아니겠냐’라며 ‘시위 때 보이는 남성에게 기꺼이 황산을 부어주겠다’고 했다. 이에 다른 네티즌은 ‘염산보다 황산이 훨씬 강한 산성이라서 피해도 더 크다’고 동조하는 반응을 보였다.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몰카 사건, 피팅모델 성추행 사건 등으로 촉발된 남녀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2번 출구 인근에서 열린 ‘불법 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엔 ‘여성’ 관련 집회 역대 최대규모인 1만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몰카 사건 피해자가 남성이어서 경찰이 이례적으로 강경한 수사를 했다”라며 “동일범죄 동일처벌”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 제기와 별도로, 일부 커뮤니티에선 타 성별을 향한 폭력적인 게시물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소영웅주의’가 이러한 폭력성을 극대화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성을 향한 ‘황산 테러’ 이전엔 여성을 향한 ‘염산 테러’ 협박 게시물이 문제가 됐다. 17일 디시인사이드엔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 2주기를 맞아 진행된 추모집회를 겨냥해 ‘나 이번 페미(니스트)시위 때 그날 온 페미들 다 학살할 거다, 염산 테러 하겠다’라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19일 혜화역 시위가 한창 진행 중이던 오후 3시36분엔 ‘지금 염산 챙기고 출발한다. 뉴스에서 보자’라는 내용의 게시물이 같은 커뮤니티에 올라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해당 게시물은 현재 삭제된 상태로, 집회장소에서 실제 테러는 이뤄지지 않았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도 예외가 아니다. 1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연예인 수지의 사형을 청원한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가수 겸 배우 수지(23ㆍ본명 배수지)가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피팅모델 성추행 사건 관련 청원 글을 지지해 관심이 모아졌는데, 해당 글 속 스튜디오가 성추행 사건과 무관한 곳으로 밝혀지면서 수지에게 과도한 책임을 묻고 나선 것이다.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만 모인 인터넷 공간에서 본인이 상대방을 처벌해 영웅이 되겠다는 소영웅주의 때문에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글이 나온다”라며 “실제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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