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이른바 '차떼기 사건'에 LG도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자 회장님은 '창피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며 당시 TV를 탔던 인기광고 '정도경영, 사랑해요 LG' 를 바로 내리라고 지시했죠. 그 해 연말 언론인 송년 행사도 사람들 볼 낯이 없다며 참석하지 않으실 정도로 경우 있고 염치를 중시하셨죠. GSㆍLSㆍLIGㆍLF 등으로 계열분리 할 때도 늘상 '좀 더 가진 사람이 양보하면 싸울 일이 없다"고 주변을 다독였습니다." LG에서 35년 근무하며 최고위 홍보임원을 지낸 정상국씨가 엊그제 페북에 올린 추념 글의 일부다.
▦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존경받는 재계 큰 별', 고 화담(和談)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홀연한 타계를 추모하는 일화와 애도가 끊이지 않는다. 그는 생전 '남들에게 베풀며 살라'는 모친의 가르침과 '한번 사귀면 헤어지지 말고 부득이 헤어지더라도 적이 되지 말라'는 조부의 창업정신에 따라 고집스럽게 정도ㆍ인화 경영을 펼쳤다. 하지만 그의 생전 업적과 언행보다 더 짙은 감동을 주는 것은 죽음을 대하는 의연한 자세다. 그는 1년 가까이 뇌종양으로 투병해왔으나 최근 병세가 위중해질 때까지 알리지 않았다.
▦ 유족들은 고인이 눈을 감기 전 연명치료를 마다했고 '주변에 폐 끼치지 않도록' 장례도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르길 원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장례는 외부 조문을 받지 않고 비공개 가족장으로, 조촐한 3일장으로 치러졌다. 발인과 장지도 알리지 않았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빈소엔 예를 갖추려는 각계 고위인사들의 발길이 발인일까지 이어졌지만 '소탈했던 고인의 생전 궤적과 차분하게 고인을 애도하려는 유족 뜻에 따라 조문과 조화를 정중히 사양한다'는 안내문이 그들을 맞았다.
▦ 새와 숲을 유달리 사랑했던 고인이 경기도 곤지암 부근에 수목장으로 안장된 어제는 중생의 평화와 행복을 기원하는 법어가 넘쳐난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은 "진리의 세계에는 나와 남이 따로 없고 시기와 질투, 갈등과 대립이 없으니, 어찌 남을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냐"며 "진흙 속에서 맑고 향기로운 연꽃이 피어나듯, 혼탁한 세상일수록 부처님의 지혜를 등불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은 고인과 '약밤나무 인연'을 맺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지 아홉해 되는 날이다. 이 인연을 뒤늦게 밝힌 김경수 의원은 '대장님 잘 계시죠'라는 글을 쓰면서 남다른 회한을 가졌을 게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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