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지배구조 맹점 지적하다
주가 오르면 차익 실현 후 떠나
국내 기업과 99년부터 질긴 악연
주주행동주의 펀드로 불리는 외국 투기자본들은 겉으로는 국내 대기업 지배구조의 맹점을 지적하며 주주 권리를 내세우곤 했지만 실제로는 막대한 차익만 챙기고 ‘먹튀’한 경우가 많았다. 장기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며 배당 수익을 얻는 게 아니라 단기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린 뒤 시세차익을 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와 투기 자본의 악연이 시작된 것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그 해 3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미국계 헤지펀드 타이거펀드는 외국계 4개 펀드와 연합해 SK텔레콤의 지분 9.85%를 확보하고 경영진을 공격했다. 이들은 SK텔레콤의 계열사 지원 등으로 주가가 저평가됐다며 경영진 교체, 사외이사제 도입, 해외투자 시 주주동의 등을 요구했다. SK텔레콤은 사외이사수 확대, 배당금 상향 등 요구를 받아들이고, 추가로 경영권 방어하는 데에 2조원을 써야 했다. 타이거펀드는 이후 주가가 오르자 지분 전량을 매각해 6,300억원의 차익을 남기고 떠났다.
2003년 4월에는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로 경영 공백이 있던 틈을 타 영국계 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이 SK의 주식 14.99%를 사들여 2대 주주로 올랐다. 이후 최태원 회장 퇴진을 비롯,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강하게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SK는 백기사 모집 등 경영권 방어에 1조원 가까운 자금을 쏟아 부어야 했다. 소버린은 2년 3개월 후 주식 전량을 매각해 9,000억원이 넘는 차익을 챙겼다.
2004년에는 영국의 헤르메스 펀드가 삼성물산을 상대로, 2006년에는 ‘기업 사냥꾼’이란 별명을 가진 미국의 억만장자 칼 아이칸이 KT&G를 상대로 경영권을 위협하며 공격했다. 삼성물산 지분 5%를 사들인 헤르메스는 당시 인수합병(M&A) 의사까지 밝혔지만 실제로는 지분(차익 380억원)만 팔아 ‘먹튀’ 논란을 일으켰다. 칼 아이칸 역시 KT&G에서 1,500억원의 차익을 얻었다.
특히 엘리엇은 2015년 이후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현대차 등 국내 주요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하며 적극 관여하고 있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Institutional Shareholders Services)의 지지를 등에 업고 압박을 가하는 게 특징이다. 2015년 6월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에 공개 반대했고, 2016년 10월에도 자회사를 통해 삼성전자 지분 0.62%를 사들인 뒤 30조원의 특별배당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강아름 기자 sara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