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밥심으로 버틴다”는 말을 쓰기 어려워 질 지 모르겠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라갈수록, 쌀 속에 함유된 영양소가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쌀을 주식으로 먹는 가난한 동남아 국가들은 기후 변화로 인해 국민들의 영양 실조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뿐 아니라 식량 안보까지 위태롭게 하는 위협 요소로 떠오른 것이다.
미국 일본 중국 과학자들로 구성된 워싱턴대 애덤 드레우노우스키 전염병학 교수 연구팀은 23일(현지시간) 학술지 ‘사이어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진 대기 환경에서 재배된 쌀의 영양 성분 함유량이 기존보다 현저하게 감소됐다고 보고했다.
가장 많이 감소한 영양소는 비타민 B였다. 비타민 B1(티아민)은 17.1%, B2(리보플라빈) 16.6%, B5(판토테닉산) 12.7%, B9(엽산)은 30.3%나 줄었다. 단백질 함량도 10.3% 낮았고, 철과 아연 역시 각각 8%, 5.1%도 증발해버렸다.
단백질과 비탄민이 결핍되면 기본적인 신체 성장은 물론 면역력도 저하돼 각종 질병에 감염될 우려가 높아진다. 또 선천적 장애가 발생할 위험도 커진다. 반면 비타민 B6와 칼슘은 변함이 없었으며, 비타민E는 이산화탄소 농도에 비례해 오히려 늘었다.
이산화탄소가 광합성 작용에 관여하고 농작물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 결과에 의아해하는 반응도 있다. 연구팀은 “식물이 흡수하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나치게 높아져 식물의 구조를 형성하는 화학 작용의 균형을 깨트렸기 때문에 이 같은 변화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실험은 중국과 일본 농지에서 이산화탄소 농도를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 증가 속도를 반영, 금세기 후반부 예상치로 상승시킨 지역(568~590ppm)과 손을 대지 않은 지역(410ppm)에서 재배하고, 수확한 쌀을 비교해 이뤄졌다. 나머지 기후 조건은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이산화탄소 공급용 플라스틱 파이프만 따로 설치해 실험을 진행했다. 쌀 품종에 따른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전 세계적으로 널리 재배되는 쌀 18종을 모두 실험 대상에 포함시켰다.
대부분의 열량을 쌀로부터 얻는 국가들은 지구 온난화가 현실화할 경우 국민 보건관리 측면에서 날벼락을 맞게 됐다. 특히 쌀이 주곡 작물이면서 국내총생산(GDP)이 낮은 방글라데시,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등의 타격은 더욱 크다. 연구팀은 “일본이나 한국은 경제 성장에 따라 쌀 소비량이 줄어들고 식단이 다채로워졌지만 저소득 아시아권 국가들의 쌀 의존도는 더욱 심화되고, 최근에는 아프리카도 새로운 쌀 소비국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기후변화에 따른 쌀의 영양 감소 위험이 너무 과소평가 돼 있다”고 지적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