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사람들은 “토끼를 키우면 뭐가 좋으냐”고 묻는다. 나는 망설임 없이 “시끄럽지 않아요”라고 답한다.
토끼는 개나 고양이처럼 ‘멍멍’, ‘야옹’하고 울지 않는다. 어지간해서는 소리를 잘 내지 않아 반려인들 사이에서 “토끼는 성대가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다. 토끼는 자의로 소리를 내지 않을 뿐 분명 성대를 갖고 있다. 왜 토끼가 다른 동물처럼 소리를 내지 않는지 연구 결과로 밝혀진 것은 없다. 다만 자연에서 먹이사슬이 하층 단계인 토끼가 상위 포식자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으려고 소리를 내지 않게 됐을 거라고 추정할 뿐이다. 한 수의사는 “토끼가 진화하면서 그랬다는 추정 자료들이 있기는 하지만 명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토끼는 자신의 감정을 소리보다는 몸으로 주로 표현한다. 외국에서는 이것을 ‘토끼 언어(Rabbit language)’라고 부른다. 토끼가 취하는 자세, 귀 모양 등을 보고 감정을 파악할 수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에서는 토끼 언어를 분석한 영상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생명에 위협을 느끼거나 아주 심한 불만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토끼는 거의 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에 토끼 언어를 공부해두면 좋다. 내 토끼가 어떤 감정 상태이고 어떤 의사 표현을 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토끼 애정표현 중 최고는? 래빗 키스(Rabbit Kiss)
반려인들은 토끼를 키우면서 한 번쯤 꼭 받아보고 싶어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래빗 키스’다. 토끼가 반려인의 신체 일부분을 혀로 핥아 주는 것을 말한다. 토끼가 주인을 사랑하고 신뢰할 때 하는 행동이다.
랄라는 2살 때 처음 ‘래빗 키스’를 해줬다. 아직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랄라는 다른 토끼들에 비해 성격이 도도한 편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고 낯선 사람들은 경계한다. 그런 랄라가 ‘래빗 키스’를 건넸을 때 나를 진짜 가족으로 받아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랄라의 경우 ‘래빗 키스’를 하는 부위도 특이했다. 보통 토끼들은 반려인의 얼굴을 혀로 핥는다. 하지만 랄라는 손을 제외하고는 ‘래빗 키스’를 하지 않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손 핥기는 랄라가 반려인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애정표현인 것 같다. 혀로 핥으면 침이 잔뜩 묻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진 않다. ‘래빗 키스’를 받는 동안에는 랄라의 행동이 참 따뜻하고 사랑스럽다는 생각만 든다.
‘래빗 키스’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초보 반려인도 있다. 시간을 두고 토끼에게 사랑을 표현하라는 말 밖에 달리 해줄 조언이 없다. 나 역시 랄라가 어떤 계기로 나에게 마음을 열고 래빗 키스를 해줬는지 모른다. 단지 열심히 밥을 주고 “사랑한다” 말해줬을 뿐이다. 미국 지식 공유 사이트 쿼라(Quora)에 토끼 관련 글을 올린 반려인들도 “정성을 다해 토끼를 키우면 보답처럼 애정 표현을 해온다”고 말한다.
토끼 “저 지금 행복해요”
랄라가 가장 많이 취하는 자세는 이른바 ‘쭉 뻗기’ 자세다. 앞다리와 뒷다리를 쭉 뻗고 어딘가에 기대어 눕는다. 요즘은 주로 자신의 집 옆에 자리를 잡는다. 영국 동물보호단체 ‘동물학대방지협회’(RSPCA) 자료에 따르면 토끼가 편안하거나 행복할 때 이런 자세를 취한다고 한다. 동물학대방지협회는 안나 메레디스 영국 에든버러 대학 수의학 교수, 애니 맥브라이드 영국 사우샘프턴 대학 수의학 교수 등의 자문을 얻어 자료를 만든다.
동물학대방지협회에 따르면 토끼는 행복할 때 보통 4가지 자세를 취한다. 첫 번째는 몸을 공처럼 만드는 것이다. 앞발을 접어 몸 안쪽에 넣는다. 두 번째는 랄라가 자주 하는 ‘쭉 뻗기’ 자세다. 그 다음으로 많이 하는 자세가 이른바 ‘슈퍼맨’ 자세다. 슈퍼맨은 하늘을 날 때 팔과 다리를 쭉 뻗는데, 이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행복을 나타내는 행동 중 가장 역동적인 것은 ‘빙키’(binky)다. ‘빙키’는 토끼가 머리를 흔들며 허리를 비틀고 높이 뛰는 행동을 말한다. ‘빙키’를 할 때 토끼는 보통 허리를 휙 돌려 어딘가로 이동한다. 체력 소모가 크기 때문에 보통 빙키는 어린 토끼들이 많이 한다. 그래서 반려인들은 빙키를 하지 않는 자신의 토끼를 보며 “이제 내 토끼가 많이 늙었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나 역시 어릴 때는 빙키를 하는 랄라를 자주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진귀한 풍경이 됐다.
행복과 편안함을 나타내는 자세가 있다면 반대로 불만을 표현하는 자세도 있다. 대표적인 게 뒷발로 땅을 세게 치는 행위다. 토끼가 뒷발로 땅을 치면 ‘쿵쿵’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가 커서 처음 듣는 반려인은 놀랄 수도 있다. 랄라는 주로 먹이가 없을 때 이 행동을 한다.
앞발을 세우고 허공에 발길질을 하는 행동도 주의해서 봐야 한다. 이때는 불만 보다는 화가 났을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꼭 알아둬야 할 자세가 있다. 몸을 낮추고 어딘가로 숨는다면 토끼 상태를 유심히 살펴보자. 아픔을 잘 표현하지 않는 토끼는 고통이 느껴지면 구석지고 어두운 곳에 숨는다. 이때 반려인이 무신경하게 반응한다면 토끼는 혼자 아픔을 견뎌야 할지도 모른다.
‘쫑긋’ 귀 모양으로 보는 토끼 언어
귀 모양으로도 토끼 심리를 파악할 수 있다. 랄라는 얼굴 길이와 비슷한 길쭉한 귀를 갖고 있다. 쫑긋 서있는 랄라의 귀를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토끼 행동 전문가 탐신 스톤이 2011년 발간한 토끼 행동에 관한 책 ‘당신의 토끼 습관 이해하기’에 따르면 토끼 귀 모양을 보고 토끼의 마음을 파악할 수 있다. 귀를 어떤 방향으로 뻗고 있는지 보면 어디에 집중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아 챌 수 있다. 토끼는 관심이 가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귀를 움직인다.
스톤은 귀의 각도에 따라 토끼 심리를 분석했는데 귀를 90도 각도로 쫑긋 세우고 있다면 주변 소리를 들으며 경계하고 있다는 의미다. 반대로 귀를 몸에 딱 붙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는 뜻이다. 또 귀를 앞이나 뒤로 30도 정도 살짝 기울이면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된다.
토끼는 소리를 내지 않는 대신 몸으로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이야기한다. 하지만 반려인이 알아채지 못한다면 토끼가 보내는 신호를 영영 모를 수도 있다. 토끼의 마음을 알고 싶다면 세심하게 살펴보자. 랄라는 이번 주 내내 귀를 몸에 딱 붙이고 편하게 누워있었다. 요즘 랄라의 마음 상태는 ‘맑음’인가 보다.
이순지 기자 seria112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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