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복면기왕’ 대회 히트…일반인 대상으로 재미를 가미시킨 프로그램 선보일 것
“꿈은 컸는데, 많이 아쉽네요.”
불만족한 듯 했다. 야심 찬 포석을 들고 나섰지만 마뜩잖은 모양새였다. 양재호(55) K바둑 대표이사의 취임 1년 복기는 그랬다. 지난 24일 경기 판교 K바둑 본사에서 만난 양 대표는 “바둑 대국과 방송은 확실하게 많이 다른 것 같다”며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고 말했다. 케이블 방송 채널 K바둑은 2002년 출범한 스카이 바둑채널이 전신으로, 지난 2011년 3월 이름을 바꿨다.
학구파 기사이자, 인기 해설자로도 잘 알려진 양 대표는 2011년 3월부터 2016년 4월까지 한국기원 사무총장을 역임했고, 지난해 6월 K바둑 수장에 올랐다. 앞서 2010년 중국 광저우(廣州) 아시안게임에 한국 국가대표 감독으로 참가, 당시 3개의 금메달을 싹쓸이하는데 일조했다. 양 대표는 1989년 ‘제1회 동양증권배’에서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 바 있다.
프로바둑계에서 크고 작은 경력을 쌓아온 양 대표이지만, 요즘엔 추구하는 바와 현실 사이의 괴리감으로 고전 중인 흔적이 역력했다. “K바둑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게 바둑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재미있고, 여성 시청자들에게까지 다가가는 프로그램 보급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런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이 떨어져 고민이 많습니다.”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바둑 보급과 대중화에 나섰지만 여의치 않다는 설명이었다.
양 대표는 시청률 상승만 고려한 해법은 알고 있다고 했다. “중국 커제 9단이나 우리나라 박정환 9단, 이세돌 9단을 포함해 최상위권 선수들의 대국만 중계하면 시청률은 금방 올라와요. 제일 간단하죠. 그렇지만 이건 바둑 애호가들만을 위한 방송이지, 중장기적으로 일반인들에게 바둑의 저변을 넓히는 방법은 아니거든요.” 양 대표가 바둑 초보자들을 위한 가이드 프로그램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이유다.
양 대표는 고민 끝에 사내 회의를 거쳐 긴급 처방도 내놨다. 공중파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복면가왕’에서 힌트를 얻어간 ‘SGM배 월드바둑챔피언십 복면기왕’(우승상금 1억원)이 대표적이다. 지난 해 11월 시작된 이 대국엔 총 64명의 국내외 최정상급 프로기사들이 참여, K바둑 스튜디오에서 복면을 쓴 상태로 대국을 벌인다. 승자는 다음 대국으로 이어가지만 패자는 복면을 벗고 정체를 공개한다. 현재 8강전이 진행 중인 이 대회는 지난 23일부터는 생방송으로 방영되고 있다. “시청자들에게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는 취지로 기획했는데 반응이 괜찮습니다. 해외 선수들의 초청이나 복면 제작 등에선 어려움도 있지만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신선한 시도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양 대표는 모기업인 SG그룹의 후원으로 진행되는 ‘복면기왕’ 기전 잉태 과정을 소개했다.
취임 2년차를 앞둔 양 대표는 ‘어린 영재 발굴’이란 구체적인 청사진도 내놨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흥미 요소가 가미된 ‘반상 영재 오디션’(가칭)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다. 양 대표는 국내 프로바둑계에서 활동 중인 나현 9단, 김정현 6단, 김형우 8단, 김세동 6단, 박시열 6단, 전영규 6단, 조인선 4단, 이상헌 4단, 김현찬 4단, 강병권 4단, 자매인 김채영 4단과 김다영 3단 등을 키워낸 바 있다. “전국을 직접 찾아 다니면서 어린 바둑 영재들을 발굴하는 프로그램을 조만간 선보일 예정입니다. 재주가 보이는 어린 친구들을 선발해 프로바둑기사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기 위해 기획한 겁니다. 앞으로도 시청률 보단 진짜 바둑의 재미를 맛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더 많이 내놓을 계획입니다.” 양 대표의 K바둑 새판짜기 반상(盤上) 행마는 이미 시작됐다. 글ㆍ사진=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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