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분양 ‘한방’ 노리지 말고
자기 재무 상태 고려해 접근을
서울 아파트 하한선 5억대 형성
동네 찍어놓고 시세 관찰해야
서울 종로구로 출퇴근하고 있는 직장인 김민규씨는 가족들과 살고 있는 은평뉴타운 30평대 아파트 외에 길음과 신도림에 아파트 두 채를 더 보유하고 있다. 큰 재산을 물려받았거나 월급이 많아서가 아니다. 그 역시 2014년 결혼 당시엔 수중의 자금이 6,000만원뿐이었다.
4년 만에 다주택자 대열에 오른 김씨는 이제 ‘구피생이’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하다. 그가 2016년 퇴근 후 집에서 개발ㆍ배포한 아파트 무료 검색엔진 ‘파인드아파트’(FindAPT)는 지난해 10만 명 이상이 이용했다. 파인드아파트는 단순한 동네 지도를 보여주는 것에서 벗어나 ▦출퇴근 동선 ▦예산 ▦지하철 ▦학군 등 조건을 입력해 이용자가 찾는 매물 정보를 알려준다. 그의 부동산 분석과 투자 노하우가 담긴 저서 ‘돈이 없을수록 서울의 아파트를 사라’는 지난해 부동산 서적 중 이례적으로 2만권 가까이 팔리며 경제경영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구피생이가 부동산 정보를 분석해 작성한 시세표(그래픽 참조)에 따르면 서울 시내 아파트 가격의 하한선은 최근 4억~5억원 대에 형성됐다. 그는 “집값은 오랜 시간 동안 수요, 공급, 입지라는 변수로 만들어진 공고한 매트릭스”라며 “자신의 재무 상태로 접근할 수 있는 곳을 결정하고 어서 올라타야 ‘인(in) 서울’이 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더 이상 주거환경이 나빠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가능한 대출을 현명하게 이용해 자가 아파트를 하루라도 빨리 사야지, 가점이 낮아 당첨 가능성도 희박한데 가격은 내 수준에 맞지 않는 신규 분양 같은 ‘한방’만 노리고 있다 보면 ‘시세표 바깥’ 지역의 월세살이를 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다음은 구피생이와의 일문일답.
-30대가 자기 집을 가지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30대에도 자가를 소유할 기회는 여전히 있는데 미리부터 자포자기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집은 돈을 모아서가 아니라 집을 팔아서 사는 것이다. 집은 언제나 팔고 갈아탈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내 집을 베이스캠프 삼아 그 다음 집으로 조금씩 업그레이드 해 나가야 한다는 거다. 그런 점에서 자가 아파트를 빨리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제 주변의 젊은 사람들 중 공덕에서 부모님께 3억원 정도 도움을 받아 전세 살던 친구들 대부분은 결국 서울 밖으로 밀려났다. 유일하게 길음에 집을 산 친구는 더는 외곽으로 밀려나지 않고 더 좋은 아파트로 이사하려 준비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집값이 떨어질까 걱정하는데 5,000만원 선에서 등락은 할 수 있어도 5억원짜리 아파트가 3억원으로 떨어질 일을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변화에 대한 용기와 확신을 가져라.”
-구체적으로 ‘갈아타는 방법’을 설명해달라.
“집을 대출 받아 사면 30년 동안 어떻게 이자를 내나 고민하는데 대한민국 역사상 30년 만기상환한 사람은 없다고 확신한다. 정부가 아무리 시장을 압박해도 대부분 4, 5년 정도 지나면 집을 팔면서 대출금 갚고 다른 아파트로 갈아탄다. 자신의 가처분소득과 적정 대출 규모를 고려해 후보군을 추린 뒤 그 중 매매 가능성이 충분해 보이는 집을 사서 살다가 다른 곳으로 가면 된다. 그런 ‘최초의 집’을 구하기 위해선 두세 군데 동네를 찍어두고 매일 부동산 앱 등으로 시세를 봐야 한다. 하루 5분 정도 쓰면 된다. 이렇게 몇 달을 하다 보면 매매와 전세 흐름이 보인다. 어차피 예산은 정해져 있으니 후보군에서 자신의 재무상태에 맞는 매물을 반드시 만날 수 있다.”
-요즘 전문가들은 ‘신축 아니면 부동산 쪽에는 당분간 손도 대지 마라’고 조언하던데.
“자가 아파트 매매와 투자는 다르다. 자가는 통근거리, 학군, 교통 등 하나라도 안 맞으면 못 들어간다. 그런데 투자는 조건만 맞으면 된다. 물론 지금은 투자를 권하는 시기는 아니다. 여름 지나고 가을이 오면 시장이 다시 열릴 것이다. 지금은 호가와 실거래가의 가격 차이가 너무 심하니 누구도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이사철이 도래하고 호가의 기세가 한풀 꺾이면 또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가격이 주춤하다 싶은 느낌이 올 때가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 강남 신축이 가장 먼저 반응할 것이고, 이후 마용성(마포ㆍ용산ㆍ성동), 뉴타운들이 차례로 움직일 것이다. 이제 서울 입장 ‘티켓(집값)’은 최소 평균 4억원에서 5억원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이라도 5억원 티켓을 끊으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직장이 종로인 사람은 길음이 아직 괜찮다. 준강남권으로 눈을 돌리면 수지가 가장 핫하다. 주목할 만한 ‘인 서울’ 포인트는 관악구다. 여긴 더러 4억원대 티켓이 남아있다. 지하철역까지 버스로 두세 정거장 거리, 준공 시점이 2000년 이후 정도로 기준을 세우고 보면 대단지이면서 꽤 좋은 매물이 관악구에 있다.”
-빌라나 다가구주택으로 서울의 첫 집을 갖는 것은 어떤가.
“반대다. 빌라는 신축 위주로 구매하기 때문에 팔 때는 가격을 낮춰야 하고 그마저도 잘 팔리지 않을 공산이 크다. 갈아타고 싶을 때 갈아탈 수 없다는 얘기다. 또 빌라는 공신력 있는 감정가와 시세가 없어 대출도 어렵다. 투자라면 몰라도 내 집 하나 살 때는 보수적 선택을 해야 한다. 벌지 못할지언정 까먹진 말아야 한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모든 게 꼬인다.”
-결국 자기 집을 빨리 가져야 부동산 시장을 올바르게 볼 수 있다는 얘기인가.
“30대 월세 비율이 50%를 넘어가고 있다. 2005년 이후 10년 동안 30대의 자가 비중은 25%에서 12%으로 떨어졌고, 전세 비중(40%)은 그대로인 채 월세만 늘어났다. 최근 들어 30대 자가 비율이 20%대까지 회복했지만, 월세비중은 그대로인 채 전세비중만 줄었다. 결국 30대 주거가 자가 아니면 월세로 양극화된 것이다. 여기에 지난해 8ㆍ2 대책 이후 대출이 줄면서 젊은 사람들은 비빌 언덕이 작아졌다. 넋 놓고 있으면 전세에서 반전세로, 다시 월세살이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말뚝을 박듯이 내가 살 집을 마련해야 그 다음 로드맵을 그릴 수 있고 희망도 보인다. 강남까지 못 가도 된다. 지금 당장 계획을 세우고 용기 있게 움직여야 한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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