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패션의 정립을 위해 2009년부터 세계 여러 나라의 패션 브랜드와 디자이너, 학자, 운동가 등이 참가해 열리고 있는 덴마크의 코펜하겐 패션 회담이 올해도 지난 15, 16일에 개최됐다. 최근 몇 년간 많은 이들이 패션의 정치적, 사회적, 윤리적 이슈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고 특히 환경 문제는 상당히 중요한 이슈다. 패션 산업도 그에 발을 맞춰 여러 개선안들을 만들고 있다.
환경 문제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으고는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이게 트렌드로 자리를 잡았다는 점은 좋은 초기 조건이긴 하다. 특히 패션에서는 구시대적이고 촌스럽다는 이미지가 생겨 자리를 잡아버리면 다시 거스르기 어렵다. 모피 같은 제품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고 덕분에 많은 브랜드들이 모피 옷을 더 이상 내놓지 않겠다는 선언을 더 부담 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패션은 기본적으로 뭔가를 파는 일이고 이익을 만들어 내도록 행동한다. 환경 문제도 마찬가지다. 많은 브랜드들이 “지속 가능한 패션”이라는 부제가 붙은 컬렉션을 따로 내놓고, 아예 그런 콘셉트를 가진 브랜드가 새롭게 등장하기도 한다.
이를 물건을 더 많이 팔아먹기 위한 전략으로만 보는 사람들도 있다.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은 저렴한 가격과 과다 생산의 상호작용으로 환경 오염을 가속화시킨 장본인이지만 지속 가능한 컬렉션을 거기에 추가해 판매하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세상의 옷이 더 많아질 뿐이다.
그렇지만 세상 일이 그렇듯 한 쪽의 의도만으로 미래가 결정되지 않는다. 공급이 존재하는 이유는 소비라는 다른 축이 있기 때문이다. 환경 오염과 재활용 등 지속 가능성의 문제를 규제에 따른 의무에서든 마케팅의 일환이든 브랜드에서 자꾸 이야기할수록 관심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지금까지 패션의 지속 가능성 논의는 소재의 출처, 생산 방식, 재활용 방안 등 주로 생산자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물론 이게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소비의 측면도 중요하다. 패션이 왜 가장 소모적인 산업 취급을 받고, 패션 브랜드는 그렇게나 많은 옷을 만들고 있을까. 바로 수많은 소비자들이 옷을 너무나 많이 사고 쉽게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옷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방식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
지속 가능한 패션을 다룬 책 ‘드레스 윤리학’을 보면 옷을 구입할 때부터 디자인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한 패션을 고려하라고 조언한다. 즉 옷을 구입할 때 디자인과 핏만 볼 게 아니라 어디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어떻게 관리해야 하고 어떻게 수선할 수 있는지를 미리 확인해야 한다. 오래 버틸 수 없는 옷을 집에 가져오는 일 자체가 낭비의 시작이다.
이번 패션 회담에서 나온 롱 리브 패션 포뮬러(Long Live Fashion Formula)도 참고할 만하다. 세탁기의 쾌속 모드 등을 이용해 가능한 빠르게 세탁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많은 환경 단체들이 세탁 횟수를 줄이라고 권고하는데 바로 물 낭비 때문이다. 하지만 세탁은 해야 한다. 아무리 지구 환경이 중요해도 더러움이 미덕이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가볍고 빠르게 세탁하는 게 물 낭비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 게다가 빠른 세탁은 옷에 스트레스를 덜 주기 때문에 옷의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 가지고 있는 걸 오랫동안 잘 입는 게 가장 환경 친화적이고 애초에 그렇게 장수할 수 있는 옷을 구입하고 잘 관리하는 게 그 시작이라는 의미다.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 모든 옷을 이런 식으로 갖춰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적당한 낭비는 군것질처럼 인간의 본성이자 팍팍한 현대 사회에서 버틸 수 있는 윤활유이기도 하다. 규칙이 사람을 너무 피곤하게 하고 단지 의무가 되어버리면 부담을 느끼게 되고 흥미를 잃게 된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만큼을 더 많은 이들의 습관이 되도록 정착시키는 일이 지금은 중요하다. 거기서 더 나아가 보다 명확하고 확실한 방향 설정과 적절한 규제를 통해 오래 입을 수 있는 좋은 옷을 구매하고 잘 관리하며 입는 게 중요하다. 이런 접근은 환경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더 멋진 일로 생각되는 사회를 만들어 지속 가능한 패션을 지속시킬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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