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무집행방해범 70%가 주취자
구조 활동 나선 119대원이
폭행당한 경우도 3년간 564명
취객이 다치면 송사 휘말려
경찰 적절한 대응 어려워
#2
일선에선 “법 집행하는 공권력
인정받지 못해 서글프기까지”
전문가들 “선진국선 엄중히 다뤄
공무집행방해 처벌 강화해야”
“닥쳐! 당신들 사과해 어서! 사과하라고!”
27일 일요일 새벽 2시40분 서울 용산구 이태원파출소로 막 들어온 20대 만취 여성이 다짜고짜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했는데, 경찰이 무시했다는 게 고성을 지르는 이유. 경찰은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신고를 한 건 맞고, 그래서 출동까지 한 것도 사실. 그런데 막상 나가보니 여성 주장과는 다른 게 많았다. 목격자라고 여성이 지목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폭행이나 그런 사실 없다’고 했고, 일행 중 일부는 “경찰대 나왔나? 안 나왔으면 필요 없으니까 돌아가라”고 무시하기까지 했다. 그곳에서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반응이 뜨뜻미지근하자 소란의 강도는 점차 세졌다. 여성은 들고 있던 화장품을 경찰들을 향해 마구 던지면서 악다구니를 썼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화장품 몇 개는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술에 취했다고 해도 경찰관을 향해서 그렇게 물건을 던지면 공무집행방해로 처벌 받을 수 있다. 그만하라”고 경고했지만, 여성은 물러설 뜻이 전혀 없어 보였다. “조센징(한국인을 낮잡아 부르는 말)들은 흥분을 안 하면 말귀를 못 알아먹어!”라는 고성을 계속 질렀다.
난동은 2시간 가까이 이어지다 가족들이 파출소까지 오고 나서야 마무리됐다. 여성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귀가했고, 경찰은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한 경찰은 “직접 폭행하는 정도가 아니면 공무집행방해로 처벌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계속 참아내고 귀가하길 기도할 수 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여성이 떠난 파출소에는 술에 취해 정신을 잃고 쓰러진 여성이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억울한 표정의 외국인 둘이 어눌한 한국말로 조사를 받고 있었다.
술을 마시는 건 얼마든지 자유다. 하지만 술에 취해 타인을 때리거나 하는 등의 피해를 준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대부분 사람들이 단잠에 빠져들었을 새벽 시간대, 서울 도심 곳곳에 위치한 경찰서와 지구대·파출소에서는 범죄에 근접하는 취객들의 행패와 소란이 셀 수 없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은 술에 취했다는 이유만으로 공권력에 폭언과 폭행을 서슴없이 가하곤 한다. 2017년 9월 11일부터 10월 31일까지 51일간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 공무집행방해죄로 총 1,800명이 검거됐는데, 이 중 74.4%인 1,340명이 술에 취한 상태였다. 하루에 26명꼴로 대한민국 공권력이 주취자에게 폭행 등을 당하고 있다는 얘기. “술에 취해 문제가 생기면 마주하는 게 경찰인데, 술에 취했다고 너무 함부로 대한다. 수도 없이 겪는 일이지만 여전히 당황스럽고 힘들다”는 한 경찰 하소연이 엄살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실제 일선 경찰들은 주취자의 무차별 폭행에 심각한 부상을 겪는다. 지난 4월 경남 밀양시에서는 중앙경찰학교를 졸업한 지 2개월밖에 안 된 신입 순경이 술에 취한 남성에게 흉기로 등과 다리를 찔리는 일이 있었고, 2월 충북 청주시에서는 만취한 남성이 낫을 휘두르며 위협하는 바람에 이를 피하던 경찰관이 넘어지면서 발목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27일 0시40분쯤 서울 광진구 화양동에 기자와 동행한 화양지구대원들도 아찔한 순간을 맞이했다. 술에 만취해 차도 근처에 쓰러져 있는 20대 남성을 깨우러 갔는데, 정신을 차린 이 남성이 일행과 싸우자 이를 말리는 과정에서 폭행을 당할 뻔 했다. 이들은 잔뜩 술에 취해 싸움을 말리려는 여성 경찰에게 “아줌마는 신경 쓰지 말고 꺼져”라고 했는가 하면, 다른 남성 경찰에게는 “이거 놔 XX!”라고 욕설을 내뱉었다. 현장에 출동했던 한 경찰관은 “그래도 경찰이 도착하면 상황이 정리돼야 하는데 오히려 더 난폭해지는 경우가 많다”며 “이제는 법을 집행하는 공권력으로서의 기능은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서글프기까지 하다”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경찰만이 아니다. 술에 취해 쓰러져 있거나, 일행끼리 싸우다 부상을 입게 되면 제일 먼저 찾는 것이 119구급대원들. 이들에게도 만취 폭행은 다반사로 가해진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 인근 술집에서 친구끼리 술을 먹고 다투다가 한 남성이 넘어져 머리를 다쳤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은 다친 사람을 병원으로 옮기던 중에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해야 했다. 나중에 술에서 깬 남성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발뺌을 했다고 한다. 올해 4월에는 전북 익산소방에서 근무하던 강연희(51) 소방위가 술에 취해 도로 한복판에 쓰러진 시민을 구조하려다 머리를 다섯 차례 가격 당해 뇌출혈로 사망에 이르기까지 했다.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는 수치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17년 1만2,883명 공무집행방해범 중 9,048명(70.2%)이 술에 취해 경찰 등에게 폭행을 가한 이들이었다. 2016년에는 1만5,313명 중 1만630명(69.4%), 2015년은 1만4,556명 중 1만375(71.2%)명으로, 공무 중인 경찰 몸에 손을 대는 사람 10명 중 무려 7명이 주취자였다. 취객 구급활동을 하던 중 폭행을 당한 119구급대원 역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 564명에 달했다.
문제는 이렇게 당하면서도 대응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주취자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송사에 휘말리게 되고, 최악의 경우 공무원 ‘자격’을 잃을 수 있어서다. 서울 은평구 연신내지구대 소속 박모 순경은 2016년 7월쯤 술에 취해 주점에서 난동을 부린 박모씨를 체포해 조사하다 폭행을 당했고, 이에 대응하다 박씨에게 전치 5주 상해를 입혔다. 박씨 가족이 과잉대응을 했다며 고발하는 바람에 재판에 넘겨졌고, 합의금 5,000만원에 치료비 300만원을 주고 나서야 징역 6개월에 선고유예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박씨 측이 상해로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다면서 제기한 4,000만원 손해배상 소송은 지금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공무집행방해 처벌 수위가 선진국에 비해 현저하게 약한 것도 주취 폭력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미국은 술에 취해 경찰의 공무집행을 고의로 방해하거나 경찰에게 욕이나 모욕적인 말을 하면 즉각 체포한다. 경찰에게는 피의자보다 한 단계 높은 물리력을 쓰는 것이 허용돼 상대가 주먹을 휘두르면 경찰봉을 사용할 수 있고, 칼을 들고 있으면 총을 사용할 수 있다. 범법자를 검거하다 부상을 입혀도 책임을 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처벌 수위도 한국보다 훨씬 높다. 삼진아웃제도가 있는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경찰 폭행 초범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지만 상습범일 경우 최고 종신형까지 내릴 수 있다.
일본도 공무집행방해를 엄중하게 다룬다. 일본 경찰청에는 공부집행방해 사건 발생 시 경찰관이 가해자와의 합의를 거부하도록 하고 있다. 엄벌을 받게 하기 위해서다. 영국은 체포에 저항하다 경찰관을 폭행하면 상해 정도에 따라 최고 종신형까지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독일은 경찰뿐 아니라 일반 공무원도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사람을 일정시간 구금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물론 한국도 법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해 9월 공무집행방해 사범에 대해 구속수사를 검토하고 손해배상 청구 등 민ㆍ형사상 소송을 통해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특히 술 먹고 경찰서에서 난동을 부리면 폭행에 이르지 않더라도 경범죄처벌법상 ‘관공서 주취소란죄’를 적용하는 등 엄정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소방청 역시 최근 폭력 행위자에 대해 최대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내릴 수 있도록 처벌을 한층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무집행방해’ 범위를 넓게 인정하고, 이를 강력하게 집행해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현재는 기물파손이나 폭행 등 물질적인 피해가 있어야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할 수 있다”며 “사실상 욕설 등 업무 방해하는 행위도 다 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하기 때문에 적용 범위를 넓혀, 술에 취해 공무를 방해하는 것이 범죄라는 인식이 퍼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역시 “공무집행방해죄 적용 범위를 당장 넓히기 어렵다면 상황에 따라 민ㆍ형사상 면책 조항을 확실히 한다든가 소송에 휘말렸을 때 현장 경찰관 판단을 우선 기준으로 삼는 등의 시스템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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