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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그 아름다움 너머…아프지 않은 땅이 있으랴

입력
2018.05.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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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일출봉과 연결된 우뭇개동산도 제주4ㆍ3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성산일출봉과 연결된 우뭇개동산도 제주4ㆍ3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기획전시 ‘제주4ㆍ3 이젠 우리의 역사’가 7월 3일까지 연장 전시에 들어갔다. 이와 별개로 5월 16일부터는 박물관 1층 부출입구에서 연계 사진전인 ‘세계자연유산 제주, 그 아름다움 너머’가 새롭게 관람객을 맞고 있다. 관람을 권하며 전시 작품의 일부를 소개한다.

3층 기획전시실의 전시는 역사적 사료와 예술작품을 통해 제주 4ㆍ3이 어떤 배경에서 시작돼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그리고 그 피해는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연계 사진전은 아름답고 평화롭게만 보이는 섬 제주의 뒷모습에 담긴 아픈 상처를 공감하고, 그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했다. 잘 알다시피 제주는 연간 1,500만 명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그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는 곳이다.

하지만 사진전은 제주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이미 4ㆍ3의 아픔 위에 서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제주국제공항과 제주 앞바다다. 과거 정뜨르비행장이라 불리던 이곳은 1949년 10월 2일 군법회의 사형수 249명에 대한 총살 집행과 1950년 6ㆍ25전쟁 발발 직후 제주경찰서 및 서귀포경찰서 관할 예비 검속자에 대한 집단 학살로 많은 시신들이 암매장된 곳이다. 2007년에 이어 올해 다시 유해발굴이 진행될 예정이다.

정뜨르비행장으로 불리던 제주국제공항. 발을 딛는 순간부터 제주의 아픔을 밟게 된다.
정뜨르비행장으로 불리던 제주국제공항. 발을 딛는 순간부터 제주의 아픔을 밟게 된다.
침묵의 제주 앞바다도 아픔의 현장이다.
침묵의 제주 앞바다도 아픔의 현장이다.
구좌읍 다랑쉬오름의 아름다운 모습.
구좌읍 다랑쉬오름의 아름다운 모습.

과거 산지부두로 불렸던 제주항은 군법회의에 의해 육지부 형무소로 끌려가는 사람들이 배를 타고 떠났던 항구다. 4ㆍ3 희생자 중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배를 타고 가다 바다에 수장되었다고 한다. 제주의 길목인 하늘과 바다 모두 4ㆍ3의 아픔을 안고 있는 셈이다. 제주 땅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이미 4ㆍ3을 밟고 있다는 얘기다.

제주도의 유명 관광지 또한 다르지 않다. 대표적인 곳이 성산일출봉과 정방폭포, 천제연폭포, 함덕해수욕장, 표선백사장 등이다. 올레길로 유명한 성산일출봉 일대의 4ㆍ3 학살터로는 터진목과 우뭇개동산이 있다. 터진목에서는 1948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수 차례에 걸쳐 성산의 성산리ㆍ온평리ㆍ난산리ㆍ수산리ㆍ고성리 등의 주민들이 희생됐다. 우뭇개동산은 해방이 되자 일본군들이 버리고 간 다이너마이트를 고기잡이용으로 가지고 있던 오조리 주민 30여명이 희생당한 곳이다.

정방폭포 상단과 이어지는 소남머리에서는 서귀리 및 서귀면 일대의 주민뿐만 아니라 남원면 의귀ㆍ수망ㆍ한남리 주민은 물론이고, 중문면과 멀리 안덕면 동광리 주민 등 산남지역 전체의 많은 주민들이 희생을 당했다. 일제강점기에 가축을 도살하는 도축장이었던 천제연폭포 입구의 주차장 일대에서는 1949년 1월 4일 중문면 관내 주민 36명이 집단 학살당했다.

전시에서는 이 밖에도 주요 학살터인 송악산 일대와 북촌리의 당팟ㆍ너븐숭이ㆍ선흘리 곶자왈ㆍ어음리 빌레못동굴ㆍ동복리 장복밭의 팽나무ㆍ다랑쉬오름과 동굴ㆍ종달리 소금밭ㆍ하가리 육시우영 등을 소개하고 있다. 잃어버린 마을로는 동광리 무동이왓과 삼밧구석ㆍ봉성리 자리왓ㆍ서귀포 영남마을ㆍ화북 곤을동ㆍ와흘리 고평동 등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서귀포 안덕면 동광 삼밧구석.
서귀포 안덕면 동광 삼밧구석.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는 대정읍 송악산 일대 들판.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는 대정읍 송악산 일대 들판.
서귀포 중문의 천제연폭포.
서귀포 중문의 천제연폭포.
서귀포 정방폭포. 제주의 이름난 관광지마다 4ㆍ3의 아픔이 서려 있다.
서귀포 정방폭포. 제주의 이름난 관광지마다 4ㆍ3의 아픔이 서려 있다.

전시에서 소개하는 이들 장소는 제주도 전체적으로 보면 극히 일부에 해당한다. 2003∼2004년 발간된 ‘제주4ㆍ3유적 ⅠㆍⅡ’에 의하면 잃어버린 마을은 108개 마을, 4ㆍ3성터 65개소, 은신처 35개소, 학살터 153개소, 수용소 18개소, 주둔지 83개소, 희생자 집단묘지 6개소, 비석 41개소에 달한다.

소설 ‘순이삼촌’에는 “이 섬 출신이거든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라. 필시 그의 가족 중에 누구 한 사람, 아니면 적어도 사촌까지 중에 누구 한 사람이 그 북새통에 죽었다고 말하리라”는 표현이 나온다. 현기영 작가의 말처럼 제주사람 중에 4ㆍ3과 연관되지 않은 사람이 없고, 제주의 자연 중 4ㆍ3의 아픔을 간직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마디로 ‘잔인한 아름다움’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아픔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주민들의 합의에 의해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와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호국영령, 그리고 4ㆍ3영령을 한 곳에 모신 하귀리 영모원(靈慕園)의 사례를 통해 화해와 상생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모두가 희생자이기에 모두가 용서한다는 뜻으로 모두가 함께 이 빗돌을 세우나니 죽은 이는 부디 눈을 감고 산 자들은 서로 손을 잡으라“는 위령비의 비문 소개와 함께.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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