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대군이 밀려온다 해도 나는 물러서지 않겠다.”에서 ‘천만(千萬)’은 아주 많은 수효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천(千)’과 ‘만(萬)’도 그럴진대 그 둘을 합한 ‘천만’이 상징하는 수효는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그런 상징성 때문인지, ‘천만’의 쓰임은 ‘수효의 많음’을 넘어 ‘정도의 대단함’을 나타내는 데까지 확장되었다.
‘위험천만하다’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는 뜻인데, 여기에서 ‘천만’은 ‘비교할 대상이 없을 만큼 (위험의) 정도가 대단히 심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런 용법은 ‘섭섭하기 짝이 없다’는 뜻의 ‘유감천만이다’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정도의 대단함’을 나타내는 ‘천만’은 ‘아주’나 ‘매우’와 같은 부사의 뜻과 용법으로 쉽게 전환될 수 있다. ‘천만다행이다’, ‘천만부당하다’, ‘천만뜻밖이다’, ‘천만의외다’ 등에서 ‘천만’의 뜻과 용법이 그렇다. 그런데 ‘부당, 뜻밖, 의외’ 등 부정적인 말과 더불어 쓰일 경우, ‘천만’은 ‘전혀’의 뜻과 용법에 근접한다. ‘전혀 그렇지 아니하다, 절대 그럴 수 없다’는 뜻의 감탄사인 ‘천만에’는 이런 맥락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어사전’(1938)에서는 ‘천만에’를 ‘천만의외에’에서 줄어든 부사로 설명했다. 여기서 ‘아주 의외다’와 ‘전혀 그렇지 아니하다’의 의미적 연관성에 주목하면, ‘천만에’가 부정의 뜻을 띠게 된 맥락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천만의 말씀’이란 표현도 ‘천만에’와 같은 맥락에서 나온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당치 않은 말씀’이라는 건 ‘천만의외의 말씀’이란 뜻을 함축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뜻이 이런데 발음까지 같으니 ‘천만의 말씀’을 ‘천만에 말씀’으로 쓰는 일이 잦을 수밖에.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