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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DEEP 딥] 연예기획사 경영권까지… 본색 드러낸 '차이나 머니'

입력
2018.06.01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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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자본에 한국 대중문화 잠식 우려

#1

판타지오뮤직 우영승 대표 해임

강한나 등 소속 연예인 3명

“비정상적 경영” 계약 해지 요구

#2

콘텐츠 주도권 빼앗길 가능성에

中 투자받은 기획사들 속앓이

스타 소속사, 제작사 하나 둘 팔려

YG엔터 3대 주주도 텐센트

연예기획사 판타지오는 한때 국내 신흥 명문 기획사로 통했다. 하정우와 전도연 공유 염정아 김성균 김새론 등 다양한 세대의 유명 배우를 거느리며 연예계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위세가 예전만 못하다 해도 현재 위상을 무시할 수 없다. 인기 아이돌그룹 워너원 멤버인 옹성우를 비롯해 tvN 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에 출연해 인기를 얻은 배우 서강준이 둥지 삼은 곳이다.

‘중국 자본 갈등’ 연예인 계약 해지 요구까지

판타지오는 요즘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 지난 1월 판타지오 창립자인 나병준 대표가 해임된 데 이어 자회사인 판타지오뮤직 우영승 대표까지 지난달 사임하면서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 중국계 대주주가 한국 경영진을 잇따라 해임한 뒤 중국인인 워이지에, 푸캉저우를 판타지오와 판타지오뮤직 대표 자리에 각각 앉히며 갈등이 커지고 있다. 2010년대 초반 중국 자본, 일명 ‘차이나 머니’가 한국 연예계에 유입되기 시작된 이후 중국 자본에 의해 국내 유명 기획사의 대표가 중국인으로 연달아 교체되기는 처음이다. 판타지오는 2016년 12월 중국의 투자집단 JC그룹의 한국지사 골드파이낸스코리아가 지분 50.07%를 인수하면서 최대주주가 중국계로 변경됐다.

판타지오 경영진 교체는 내부 반발을 불렀다. 판타지오 일부 직원들은 지난 1월 비상대책위원회까지 꾸려 “중국계 대주주의 비정상적인 경영개입과 횡포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배우 강한나 등 소속 연예인 4명은 회사를 상대로 전속계약 해지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중국인 경영체제가 들어선 판타지오가 자신들의 연예 활동 지원에 소홀했다는 이유 등으로 회사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백기사’ 인 줄 알았더니…

판타지오의 분란은 국내 연예계 전반에 마찰음을 불러일으켰다. 배우 기획사들의 모임인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연매협)는 지난 3월 개정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을 근거로 지난달 21일 이사회에서 회원사인 판타지오에 회원 자격 상실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제26조에 따르면 2년 이상 대중문화기획업에서 종사하거나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시설에서 실시하는 관련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연예기획사를 운영할 수 있다. 연매협은 중국인 대표 2명 모두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판타지오에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판타지오는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의 자격 요건을 갖춘 임원의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새롭게 자격 요건을 갖춘 신규 임원을 선출하는 과정에 있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표 교체와 소속 연예인 동요 등 판타지오가 겪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국내 연예계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주머니 사정을 해결해줄 ‘백기사’로 여겼던 중국 자본이 언제든 ‘흑기사’로 변모할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중국 자본의 투자를 받은 연예기획사의 한 고위 관계자는 “판타지오처럼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중국 자본의 경영권 장악 시도와 사업 방향에 대한 이견으로 속앓이를 하는 회사가 적지 않은 걸로 안다”고 귀띔했다.

연예인 매니지먼트, 드라마 제작, 음악 유통까지

판타지오 사태는 최근 차이나 머니의 속성이 변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내 대중문화계에 유입된 초기 차이나 머니는 한류 콘텐츠 확보 목적이 강했다. 한국 회사에 지분 투자를 해 확보한 콘텐츠를 중국 시장에서 유통해 수익을 올리려 했다. 나아가 한국의 콘텐츠 제작 노하우를 배우는 계기로 삼으려고도 했다. 최근 중국 자본의 성격은 보다 공격적이다. 기업 인수를 비롯해 콘텐츠 기획과 직접 제작에 나서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중문화 몇몇 기업은 이미 ‘중국 손’에 넘어갔다. 김윤석과 유해진 주원 등 주연급 배우들이 대거 속한 심엔터테인먼트는 2년 전 중국 최대 연예 기획사인 화이브라더스에 223억원에 팔렸다. 인기 드라마 ‘올인’과 ‘프로듀사’ 등을 제작한 초록뱀미디어의 최대주주는 250억원을 투자한 중국 DMG그룹이다. 국내 5대 음원 유통사 중 한 곳인 소리바다 역시 중국계 투자 전문회사인 ISPC에 매각됐다. 경영권 확보까진 아니어도, 빅3 기획사도 차이나 머니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아이돌그룹 빅뱅 등이 속한 YG엔터테인먼트의 3대 주주는 중국 대표 인터넷 기업인 텐센트이고,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는 SM엔터테인먼트에 355억원(지분 4%)을 투자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연예인 매니지먼트를 비롯해 드라마 제작, 음원 유통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중국 자본의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차이나 머니의 역습이다.

영화투자배급사까지 국내 설립

차이나 머니의 공격성은 충무로에서도 엿볼 수 있다. 최근 영화계엔 중국 자본 투자배급사가 첫 등장했다. 화이브라더스코리아가 유정훈 전 쇼박스 대표와 손잡고 최근 출범을 알린 회사 메리크리스마스다. 유 전 대표는 10년 가량 쇼박스를 이끌며 ‘내부자들’과 ‘검사외전’ 등 여러 흥행작을 내놓았다. 유 전 대표의 쇼박스 퇴사 소식이 올 초 전해졌을 때 그의 다음 행보가 충무로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다. 흥행 될 성 부른 영화를 보는 ‘선구안’이 탁월한 유 전 대표와 막강한 중국 자본이 만났으니 국내 영화계 관계자들은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이다.

중국 자본의 공격적인 행보는 최근 정세와도 무관치 않다.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배치에 따른 한류금지령(한한령)으로 주춤했던 중국 자본의 국내 유입은 요즘 다시 활기를 띠는 분위기다. 한국과 중국 정부의 정치적 긴장이 완화되면서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얼어붙은 현지 시장이 녹지 않겠느냐는 기대 섞인 전망이 업계 관계자들 사이 나오면서부터다. 국내 대형 가요 기획사에서 아티스트 발굴(A&R)을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중국의 한 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아이돌그룹 만들고 있다”며 “이르면 내년 한국과 중국에 동시 데뷔시킬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중국 대형 공연 기획사인 아이디어뮤직엔터테인먼트(iMe)도 지난해 한국지사를 세워 배우 봉태규 등을 영입해 국내 매니지먼트 사업에까지 진출했다. 이 회사가 해외에서 공연이 아닌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기는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 시장에 관심이 높다는 뜻이다.

“중국 자본 철수 후 ‘대만 리스크’ 막아야”

차이나 머니의 공습이 다시 본격화되면서 부작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인력 유출이 눈에 띈다. 아이돌그룹 티아라 멤버인 지연은 최근 중국 연예기획사인 롱전과 전속계약을 맺었다. 전 소속사인 MBK엔터테인먼트를 떠나면서 국내 기획사 대신 막강한 자본력을 지는 중국 회사를 새 파트너로 택한 것이다. 중국에서 ‘예능 한류’가 거세게 일면서 방송가는 ‘공동화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MBC ’나는 가수다’를 만든 김영희 PD와 SBS ‘아빠를 부탁해’를 만든 장혁재 PD 등 유명 제작자들이 중국으로 건너 가면서 한동안 국내 예능 시장은 활력을 잃기도 했다.

차이나 머니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국내 시장 변질에 대한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기획사 경영권을 확보하고 콘텐츠 기획을 주도하면서 콘텐츠 제작이 중국 현지 입맛에 맞춰질 가능성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중국 자본 철수 후 대중문화 시장이 무너진 대만의 사례를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지혜원 대중문화평론가는 “국내 연예인 기획사나 콘텐츠 기업은 자본과 지배 구조가 취약해 중국의 공격적 인수에 크게 휘둘릴 위험이 높다”며 “연예인 뿐 아니라 제작 인력 및 판권까지 흡수한 뒤 자본을 철수해 생길 수 있는 후폭풍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김헌식 동아방송대 교수는 “한중 합작펀드를 통해 중국 자본의 직접투자보다 간접투자를 유도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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