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가운 햇빛 피할 곳이 없었는데, 파라솔 아래 쏙 들어가니 덥지 않아 좋았어요.”
2일 서울 마포구 홍대앞을 찾은 직장인 박슬기(35)씨가 횡단보도 앞 그늘막에서 햇빛을 피하며 한 말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주말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은 30도까지 올라갔다. 횡단보도 앞에 서있던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햇빛을 막아보려 그늘막 아래 몸을 숨겼다.
마포구, 동작구 등 서울 자치구들이 지난달부터 횡단보도에서 폭염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시민들을 위해 그늘막을 설치하고 있다. 몽골 텐트 모양이 많았던 예년과 달리 파라솔 형태의 구조물이 등장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뜨거운 햇빛을 막아주는 ‘파라솔’을 두고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한 네티즌은 “시골에 살고 있어 처음 보는데 일상에서 꼭 필요한 것이라 우리 동네에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폭염 그늘막은 올해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다. 지난 2013년 보행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리는 것을 보고 동작구에서 창고에 보관 중인 천막을 설치하면서 시작됐다. 주민들의 호응이 높아 ‘히트 행정’으로 평가 받으며 서울 곳곳에 그늘막 설치 열풍이 불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엔 서울 23개 자치구에서 800개가 넘는 그늘막이 설치됐다. 이 그늘막들은 ‘무더위 오아시스’라 불리며 시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공익성을 인정받아 도로법의 도로 부속 시설물로도 지정됐다.
하지만 문제도 있었다. 그늘막 설치 기준이 따로 없어 자치구마다 그늘막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특히 몽골형 텐트 모양의 그늘막은 강풍에 날아갈 경우 시민들의 안전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다. 운전자의 시야를 가릴 정도로 큰 그늘막과 광고가 덕지덕지 붙은 행사용 텐트도 있었다.
문제가 제기되자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그늘막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각 자치구 폭염대책본부에 전달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올해부터 그늘막은 태풍 등 위험 상황시 누구나 쉽게 접을 수 있고 탈부착이 가능한 접이식 파라솔이어야 한다. 그늘막은 운전자 시야 확보에 문제가 없는 위치에만 설치할 수 있다. 서초구의 그늘막 ‘서리풀 원두막’이 가이드라인에 가장 적합한 디자인으로 평가 받으면서 각 자치구들이 이와 비슷한 파라솔을 설치하고 있다.
‘서리풀 원두막’은 지난해 영국 비영리 친환경 단체인 ‘그린 오가니제이션(The Green Organisation)’이 전 세계 친환경 우수 사례에 수여하는 ‘그린애플 어워즈’를 받기도 했다.
그늘막 가이드라인이 생기면서 올해 횡단보도 앞에 설치되는 그늘막은 대부분 파라솔 형태를 띠고 있다. 보통 높이 3m, 폭 3~5m로 성인 20명 정도가 동시에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규모다.
그늘막 인기가 높아지면서 올해는 자치구들이 아이디어 경쟁도 펼치고 있다. 동작구, 마포구, 성동구, 서초구 등은 색과 이름을 달리해 그늘막의 특색을 살렸다. 마포구는 초록색 파라솔에 그늘나루라는 이름을 붙였다. 서초구는 기존 그늘막의 절반 크기인 미니 그늘막도 도입했다. 공간이 좁은 교통섬 지역에도 설치해달라는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다.
이순지 기자 seria112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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