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신태용호는 허약한 수비조직력 때문에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3전 전패하고 돌아올 것’이라는 비아냥을 듣지만 태극전사들의 면면을 보면 너무 야박하다는 평가다. 특히 중원과 공격진에는 역대 한국 축구에서 나오기 힘든, 재능 있는 선수들이 가득하다. 아시아 출신 중앙 미드필더는 유럽 빅 리그에서 통하기 힘들 거란 편견을 보기 좋게 깬 ‘캡틴’ 기성용(29ㆍ스완지시티), 세계적인 공격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손흥민(26ㆍ토트넘)이 대표적이다. 황희찬(22ㆍ잘츠부르크)과 이승우(20ㆍ베로나)는 ‘미완의 대기’지만 도전적인 돌파와 빠른 드리블 등 결이 다른 플레이로 팬들의 지지를 받는다. K리그를 호령하는 이재성(26ㆍ전북)은 지금 당장 유럽 무대에 내놔도 손색없다. 은사와 가족, 지인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이들 5인방의 성장기와 숨은 뒷이야기를 소개하는 <너, 어느 별에서 왔니> 를 연재한다. 너,>
기성용은 지난 1일 전북 전주에서 열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국내 마지막 평가전에서 전반에 2실점한 뒤 라커룸으로 가다가 완장을 집어 던졌다. 그는 이날 센추리클럽(A매치 100경기 출전) 가입의 영광을 안았지만 하프타임 때 그라운드에서 잠깐 가족들 축하를 받을 때 빼고 내내 얼굴이 굳어 있었다. 1-3으로 완패한 뒤 기성용은 “오늘 같은 실수를 월드컵에서 되풀이하면 감당할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작심하고 발언했다. 조준헌 대한축구협회 홍보팀장은 “브라질월드컵 참패 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여론이 나빠지는 걸 뼈저리게 느낀 그가 절박한 마음에 동료들에게 호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초4 때 부친 “축구 안되니 공부나”
은사 정한균 감독 “기다리자” 믿음
6학년 때 체전 금메달ㆍMVP 보답
욱하는 성격 결혼 후에 달라져
승부차기 맨끝에도 골대 구석 슛
요즘 “우리가 해낼거야” 입버릇
기성용이 처음 축구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다. 광양제철고 축구부 감독이었던 부친 기영옥(현 광주FC단장) 씨는 순천중앙초 정한균 감독을 찾아 아들을 맡겼다. 기본기 훈련에 충실한 정 감독의 축구 철학을 믿었기 때문이다.
정 감독은 “나이가 어려 파워는 없었지만 큰 키에 몸이 유연했다”고 기성용을 기억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조급했던 모양이다. 기성용이 4학년 말까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자 기 단장은 정 감독에게 “축구를 그만두고 공부를 시켜야겠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축구 선배이기도 한 기 단장에게 “형님은 고등학교 지도자고 초등학교는 제가 전문가”라며 화를 벌컥 냈다고 한다. 이어 “이 단계만 넘으면 크게 될 선수니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설득했다.
기 단장은 반신반의하며 돌아갔으나 실제로 기성용은 초등학교 5학년 말부터 꽃을 피웠다. 6학년 때는 전국소년체전 금메달, 최우수선수(MVP)를 휩쓸고 차범근 축구대상을 받으며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다. 지금도 정 감독은 기성용이나 기 단장을 만나면 “그때 형님(기 단장) 말 듣고 축구 그만뒀으면 어떡할 뻔 했느냐”고 핀잔을 준다.
정 감독은 기성용의 5학년 마지막 학기 때 일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본격적으로 실력이 붙기 시작한 그는 자나 깨나 축구 생각만 했고 욕심도 엄청 강했다. 하루는 연습경기 도중 자기에게 패스가 계속 안 오자 공을 손으로 잡은 뒤 그라운드 밖으로 뻥 차버리는 ‘기행(?)’을 저질렀다. 정 감독은 “그런 녀석은 처음 봤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그 때는 성용이를 따끔하게 혼 냈는데 돌이켜 보면 그런 욕심이 지금의 기성용을 만든 것 같다”고 했다.
물론 기성용의 지나친 승부욕과 ‘욱’하는 성질이 암초가 된 적도 있다. 그는 2007년 올림픽대표팀 경기력에 비난이 일자 미니홈피에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지’라고 글을 남겨 구설에 올랐다. 2013년에는 SNS에 최강희 당시 대표팀 감독을 조롱한 게 알려져 팬들의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2013년 탤런트 한혜진을 만나 결혼하고 2015년 호주 아시안컵에서 대표팀 주장을 맡으며 몰라보게 성숙해졌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성용은 모교인 순천중앙초에 10년 째 매해 3,000만원 상당의 축구 용품을 보내는 선행을 이어오고 있다.
2009년 기성용과 에이전트 계약을 해 10년 째 인연을 맺고 있는 추연구 C2글로벌 이사는 “못 말릴 정도의 강하고 톡톡 튀는 성격이 없으면 큰 선수가 되기 힘들다. 예전의 성용이는 그런 성격을 밖으로 표출했지만 지금은 안으로 넣어둘 줄 안다. 거기서 지금의 카리스마가 나오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추 이사가 본 기성용은 마음먹은 건 어떻게든 해내는 독종이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때 그는 스물 한 살의 어린 나이에도 주눅 들지 않고 그라운드를 누비며 2도움을 기록해 원정 16강의 디딤돌을 놨다. 2012년 런던올림픽 홈팀 영국과 8강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선 기성용은 슈팅을 과감하게 오른쪽 상단에 꽂아 넣어 경기를 끝냈다. 어지간한 강심장 아니고는 찰 수 없는 코스다.
이번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도 기성용은 가까운 지인들에게 “뭔가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과거와 달라진 게 있다면 ‘나’가 아닌 ‘우리’를 앞세운다는 점이다. 예전에 큰 대회를 앞둔 기성용은 “내가 해낼 거야”라고 입술을 깨물었지만 요즘은 “우리대표팀이 해낼 것”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닌다.
레오강(오스트리아)=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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