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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조선과 조선의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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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조선과 조선의 불화

입력
2018.06.04 19: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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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출신 강효상 의원 조선 칼럼 비난

제1 야당 권력의 중대한 언론 자유 침해

‘북조선’ 변화 의지 부정적으로만 봐야 할까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인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5월 31일 국회 정론관에서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있다. 강 의원은 이날 조선일보에 실린 양상훈 주필 칼럼과 관련, “청와대 대변인의 논평 이틀 뒤에 이런 칼럼이 실린 것은 조선일보가 청와대에 백기 투항을 한 것과 같다”며 양 주필의 파면을 요구했다. 뉴스1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인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5월 31일 국회 정론관에서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있다. 강 의원은 이날 조선일보에 실린 양상훈 주필 칼럼과 관련, “청와대 대변인의 논평 이틀 뒤에 이런 칼럼이 실린 것은 조선일보가 청와대에 백기 투항을 한 것과 같다”며 양 주필의 파면을 요구했다. 뉴스1

며칠 전 “방상훈 사장님 안녕하셨습니까.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입니다”로 시작되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께 보내는 공개편지’를 접했을 때 전형적인 가짜 뉴스라고 단정했다. 박정희 독재와 치열하게 투쟁한 백기완씨가 그를 ‘근대의 영웅’이라고 찬양하는 내용의 ‘고백’처럼 그럴 듯 하게 창작된 가짜 글이 SNS상에 떠도는 게 어디 한 둘인가. 이 공개편지엔 당일(5월 31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양상훈 주필의 칼럼이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협박에 굴복해 쓰여졌다며 방 사장에게 당장 양 주필을 파면하라고 요구하는 등 언론인 상식으론 도저히 믿기지 않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강 의원이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들에게 이 공개편지를 발표했다는 얘기를 듣고 말문이 막혔다. 나는 일상 언어생활에서 ‘미쳤다’는 말을 가능한 한 쓰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 장애인이나 환자를 비하하고 차별하는 선입견을 강화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 의원의 기자회견 소식을 듣고 거의 반사적으로 그 표현을 입 밖에 내고 말았다.

강 의원은 ‘역사에 한국민은 전략적 바보로 기록될까’ 라는 양 주필의 칼럼을 문제삼았다. 양 주필은 칼럼에서 현재 진행 중인 북핵 폐기 협상이 북한을 사실상의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대놓고 ‘서울 핵 폭발’과 같은 위협은 하지 못하며 궁극적으로 북 체제 붕괴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고 썼다. 그렇게 되면 한국민은 당장의 전투에선 져도 전쟁에서는 이기는 ‘전략적 바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이라고 평가했다.

강 의원이 양 주필의 논조를 비판하고 생각을 달리하는 것은 본인 신념이나 성향상 그의 자유다. 하지만 이런 논조가 이틀 전 청와대 대변인이 조선일보와 TV조선의 일련의 보도를 비판한 결과라고 주장하는 것은 언론인 출신인 그의 양식을 의심케 한다. 강 의원은 정치인으로 변신하기 전 조선일보 편집국장으로 2년 7개월이나 재직했다. 그의 전임 편집국장이 이번에 파면을 요구한 양 주필이다. 자신의 경험상 조선일보가 청와대 대변인의 한 마디에 주필이 부랴부랴 칼럼 논조를 바꿀 정도로 ‘쉬운’ 언론이라는 뜻일까.

강 의원의 논리를 좇다 보면 문재인 청와대가 대변인을 앞세워 조선일보를 조직적으로 압박하는 것으로 비친다. 하지만 김 대변인은 청와대 내에서도 튀는 브리핑으로 논란이 적지 않다고 한다. 최근 일련의 한반도 정세 대전환을 다루는 조선일보 보도 방향과 논조가 진보적 관점에서 보면 도가 지나치는 것으로 비치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진보언론(한겨레신문) 출신인 김 대변인이 자신의 생각을 실어 강한 논평을 한 것이겠지만 언론계 안팎에선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기자를 오래한 강 의원은 이런 기초적인 정황조차 ‘취재’하지 않고 감정만 앞세워 양 주필의 칼럼 배경을 자의적으로 재단한 셈이다.

이번 사태는 대한민국 유수 언론인 조선일보뿐만 아니라 언론계 전체의 부끄러움이다. 강 의원은 편집국장직에서 물러난 지 5개월 만에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았다.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나 언론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처신이다. 그리고 제1 야당 국회의원이자 당 대표 비서실장인 강 의원이 친정 언론사의 논조를 트집 잡아 사장에게 주필의 파면을 요구하는 것은 권력의 횡포이자 중대한 언론자유 침해다.

조선일보는 한반도 정세 대전환을 주도하는 ‘북조선’의 김정은 위원장의 의도에 어떤 언론보다 비판적이다. 조선일보와 북조선의 불화다. 이런 와중에 작은 변화를 보인 양 주필의 칼럼에 비분강개한 강 의원의 공개편지는 현 조선일보와 ‘전직 조선일보’의 불화인데,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렸다. 분명한 건 한반도 냉전구도 해체와 평화정착 쪽으로 역사의 수레바퀴가 구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제 조선일보도 이런 변화의 흐름을 진지하게 바라봐야 할 때가 아닐까.

논설고문ㆍ한반도평화연구소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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