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정부의 삼성 등 담합조사에
수요 60% 시장서 불이익 우려
경쟁 치열해 담합 어려운 시장
中 기업 활로 뚫는 견제구 성격
업계 “시빗거리 또 찾을 것” 예상
중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을 상대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담합 조사에 나서자 국내 산업계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업계는 가격 담합 판정까지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올해 하반기 중국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반도체 시장에 진입하는 시기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담합 조사가 자국 반도체 기업들의 활로를 열어주기 위해 한국 기업의 발목을 잡는 첫 번째 조치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4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반도체는 지난해 979억3,700만달러 어치를 수출한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다. 전체 수출의 17.4%를 책임졌고, 올해 들어서도 매월 지난해 대비 40% 안팎의 수출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약 60%를 소화하는 세계 최대 시장이다. 국내 반도체 수출 비중도 중국이 39.5%, 홍콩이 27.2%에 달한다.
만약 중국 정부가 가격 담합으로 판단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역대 최대인 80억달러(약 8조6,040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미국에서 한 로펌이 제기한 반도체 가격 담합 집단소송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국내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재앙 수준이 될 수도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조사에 응하고 있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현 시장 구도에서 담합은 상식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올해 1분기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44.9%로 1위이고, SK하이닉스(27.9%)와 미국 마이크론(22.6%)이 2, 3위다. 기술력에서 한발 앞선 제품으로 압도적인 점유율을 달리고 있는 삼성전자로서는 각국 바이어들이 우수한 제품을 구하려 줄을 서는 마당에 굳이 2, 3위와 담합을 할 유인이 없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D램 공정 가동률이 100%에 이르는데 공급 조절을 통해 의도적으로 가격을 높이고 있다는 주장도 논리에 어긋난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대만 업체들과의 반도체 치킨게임에서도 입증됐듯이, 가격경쟁으로 조금 손해를 봐도 후발주자를 없애면 더 큰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게 반도체 시장인데 경쟁사들과 손을 잡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도 “중국 정부가 반도체 가격이 비싸다는 자국 기업들의 불만을 대변하기 위해 취한 액션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중국의 가격 담합 조사를 놓고 여러 해석이 분분하지만 “이제 시작”이란 점에 대해서는 반도체 업계의 의견이 일치하는 분위기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외치며 전폭적으로 자국 기업들을 밀어줬고,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생산라인을 건설한 칭화유니그룹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푸젠진화 등은 올해 연말 시험생산에 이어 내년부터 D램과 낸드플래시 본격 양산에 들어간다. 시기적으로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이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한 시간을 벌어주고, 시장 진입 벽을 낮추기 위해 한국 기업 발목잡기가 시작된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은 최근 시진핑 국가주석까지 “반도체는 심장과 같고, 우리도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고 독려하는 상황이다.
산업연구원 김양팽 연구원은 “가격 담합으로 결론을 내지 않더라도 연말부터 중국 기업들이 반도체 생산을 시작하면 어떻게든 시빗거리를 찾아 한국 반도체를 견제하는 시도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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