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前대통령 면담 뒤 상고법원 박차
걸림돌이던 법무부와 ‘빅딜’ 추진
영장 없는 체포 활성화 방안 등
인권침해 소지 거래용 당근 제시
보수 언론 1면 이용 압박 전략도
‘문제법관’ ‘출세 포기한 판사’ 감찰
수뇌부 나서 법관 찍어내기 검토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내부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입법을 밀면서 검찰 수사 편의 관련 현안을 두고 법무부와 ‘빅딜(Big deal)’을 검토한 정황이 담긴 문건이 추가로 드러났다. 체포나 압수수색 등 국민 기본권 직결 사안까지 협상 대상으로 삼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5일 공개한 ‘VIP(박근혜 대통령) 면담 이후 상고법원 입법추진전략’이란 행정처 대외비 문건에 따르면, 양승태 체제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입법의 걸림돌이던 법무부를 ‘협상 파트너’로 새롭게 지목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2015년 8월 6일 박 전 대통령 면담에서 확인한 “상고법관 임명의 민주적 정당성 결여, 4심제 논란 등 문제 해결을 위해 법무부와 협의해 창조적 대안을 창출하라”는 VIP 의중에 따른 것이다. 이 문건은 면담 2주 뒤 행정처 기획조정실이 작성했다. 행정처는 ‘VIP의 직설 스타일로 보아 상고법원안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고 자평하고 ‘VIP 지시를 동력 삼아 상고법원 추진 과정에 궤변과 트집으로 대응해온 법무부와 지속ㆍ단계적 접촉하며 빅딜 등을 통한 협상 타결을 추진한다’는 방안을 냈다.
행정처는 이에 따라 법무부와 상호 타협을 통한 ‘윈윈’ 구도 형성을 고민하며 법무부 구미에 맞는 회유책을 검토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 당시 법무부와 유착이 심했던 검찰을 상대로 인권침해성 수사를 견제해야 할 사법부 역할에 어긋나는 위험한 발상을 문건에 실었다. ‘영장 없는 체포 활성화’ ‘체포 뒤 계속 신병확보 필요성 등 심사’ ‘전자정보 관련 효율적 압수수색 절차 정비 및 증거능력 인정 확대 방안’ 등이다. 구속ㆍ압수수색 영장제도를 두고 법무부가 협조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영장 발부 등의) 통제 강화 시, 압박 카드도 될 수 있다’고도 썼다. ‘상고법원 입법 지연 시에는 언론을 이용한 법무부 책임론 부각’ 전략도 짜면서 ‘조선일보 1면 기사 활용’ 등을 언급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사법부 내부 검토 건이라 실제 그런 제안 등이 왔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법관의 독립성 침해 소지로 비칠 수 있는 문건(문제 법관에 대한 시그널링 및 감독 방안)도 나왔다. 빅데이터(Big Data) 분석을 통해 ‘문제 법관’의 근무형태와 재판 투입 시간, 인터넷 사용시간 등을 확인하는 ‘고강도 직무감찰’을 벌인다는 검토보고서였다. 재판 기록도 제대로 안 보고 배석판사에게 모욕을 주는 일부 부장판사를 대상으로 삼는 식이라 행정처 윤리감사관실의 고유 업무로 보이나, ‘출세(승진)를 포기한 판사’라 표현하면서 법원장과 수석부장판사 등 법원 수뇌부가 감독하는 주체로 돼 있어 ‘말 안 듣는 판사 찍어내기’용으로 작용할 우려를 낳는 내용이다.
이날도 부산고법 판사(지방법원 부장급)와 부산지법 배석판사, 서울남부지법 단독ㆍ배석판사들이 각각 회의를 열어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한 형사적 책임 추궁 등 후속조치를 촉구했다. 반면, 서울고법 부장판사회의는 “대법원장이나 행정처 등이 형사고발과 수사의뢰 등을 하면 향후 재판 담당 법관의 독립이 침해될 수 있다”고 결론을 내, 내홍 수습에 무게가 실렸다. 서울남부ㆍ수원ㆍ대전ㆍ광주ㆍ울산지법ㆍ서울회생법원 등에서도 판사회의가 잇따랐다. 전국 최대법원인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회의는 비공개로 마무리됐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나 법학 교수 115명이 모인 ‘대법원 사법농단 규탄 법률가 일동’은 대법원 동문(東門)에 천막을 치고 시국 농성에 돌입했으며, KTX 여승무원 등 행정처와 박근혜 청와대의 협상용 판결 사건 당사자들은 양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 등을 고소ㆍ고발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김진주 기자 pearl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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