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전참시’ KBS ‘연예가중계’
MBN ‘뉴스8’ 까지 일베 사고
주로 알바생이 이미지 검색
마감 쫓겨 사전 검수는 대충
3단계 체크ㆍ서면 결재 등
SBS 대책 마련 후 사고 줄어
MBC는 “시스템 논의 단계”
지난 3월 첫 방송된 ‘전지적 참견 시점’(‘전참시’)은 MBC의 새 간판 예능프로그램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매니저의 시점에서 바라본 스타들의 일상을 그려내며 시청자들의 갈채를 받았다. 지난달 5일 방송에서 자체 최고인 시청률 9.4%를 기록하며 장기 상승세를 예약하는 듯했다.
하지만 ‘전참시’는 3주째 전파를 못 타고 있다. 한 때 폐지설까지 돌았다. 5일 방송에서 극우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의 게시물을 연상시키는 영상이 나간 뒤부터다. 개그우먼 이영자가 어묵을 먹는 모습에 세월호 참사 뉴스특보 화면을 편집한 장면이었다. ‘일베’ 이용자들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비하할 때 쓰는 비유법을 옮겨놓은 듯한 편집이라 거센 비판을 받았다. 스타 PD이자 해고 언론인 출신인 최승호 사장이 취임한 이래 새 출발을 강조했던 MBC에서 벌어진 방송사고라 충격은 더 컸다. MBC는 진상조사위를 구성해 방송 경위를 조사한 후, 제작진 경질과 최대 감봉 6개월 중징계 조치를 취했다.
요즘 방송사들에는 ‘일베’ 경계령이 내려져 있다. 잊힐 만하면 ‘일베’ 관련 방송사고가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일베 방송사고가 나면 사회적 질타가 쏟아지고, 제작진에 대한 중징계가 이뤄지고 있으나 언제 그랬냐는 듯 유사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전참시’로 방송가가 떠들썩했던 지난달 24일 MBN ‘뉴스8’에서 스페인 유명 프로축구단 레알 마드리드의 공식 엠블럼이 일베의 조작 이미지로 편집돼 방송됐다. 한국 방송을 대표한다는 KBS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달 18일 KBS2 예능프로그램 ‘연예가 중계’는 두 차례라 일베에서 사용되는 이미지를 방송에 활용했다. 방송사들의 근절 다짐에도 엇비슷한 사고가 이어지니 음모론까지 나온다. 방송사에 일베 성향 직원들이 일하고 있고, 이들이 의도적으로 일베 이미지를 노출한다는 것이다.
내부 검증 시스템 부재·안일한 제작 태도
방송가에서는 부실 방송과 이에 못지 않은 부실 대책을 근본 원인으로 꼽는다.
지상파 방송사 한 실무 관계자에 따르면 제작진은 촬영과 편집이 빠듯한 일정 속에서 이뤄지니 회사 내부 데이터베이스가 아닌 구글 검색으로 얻은 이미지를 방송에 사용한다. 이미지 검색 작업은 주로 아르바이트생이 맡아서 한다. 이미지 사용에 대한 엄격한 교육을 해도 큰 효과가 없다. 자료로 쓸 이미지를 찾는 전담 인력이 별도로 없어서다.
검증되지 않은 이미지가 들어간 화면은 실무자의 검수를 거치지만, 관리자에게까지 전달되지 않는다. 외주제작사가 프로그램 제작을 하면 면밀한 검수는 더 어려워진다. 컴퓨터그래픽(CG)으로 합성한 이미지를 많이 사용하는 예능프로그램에서 사고가 더 많이 발생한다. 한 방송계 관계자는 “늘 마감에 쫓겨 편집실에서 밤낮없이 일을 하는 상황이라 자료화면까지 일일이 관리자에 사전 검수를 받기가 어렵다”며 “방송사 제작 관리 시스템의 부실이 일베 사고로 여실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MBC “위험 요소 걸러낼 시스템 구축 논의”
SBS는 2013~2016년 4년간 일베 이미지 노출 사고가 10건이나 발생했다. 지난해 5월에는 SBS 자회사인 SBS플러스의 시사 풍자 프로그램 ‘캐리돌뉴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이미지가 노출됐다. 국민 정서에 크게 반해 ‘캐리돌뉴스’가 폐지될 정도로 여파가 컸다.
SBS는 재발 방지를 위해 특단의 조치를 세웠다. 포털 사이트에 있는 이미지의 다운로드와 무단 사용을 금지하고, 해당 기관의 공식사이트에서 다운 받은 이미지만 사용하도록 했다. 외부 사이트 이미지를 사용할 때 3단계 크로스체크를 해야 하며, 최종 결정자의 서면 결재를 받아 사용하도록 했다. 로고 이미지만 별도로 모아놓은 라이브러리도 운영하고 있다. SBS는 대책 마련 이후 일베 관련 방송사고가 줄었다.
MBC는 최근에야 관련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성을 인식했지만, 개발 비용 마련 등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 MBC의 한 관계자는 “위험요소가 있는 자료 이미지, 영상에 주의 표시를 하거나, 권한에 제한을 두는 방식의 시스템을 구비하자는 얘기가 나왔지만 아직 논의 단계”라고 밝혔다.
해외 매체들은 이미지 데이터베이스와 이미지 이용 가이드라인을 갖추고 있다. 인종차별, 성차별 등 국민 정서를 해칠 위험요소가 있는 이미지와 영상을 분류해 사전 심의를 한다. 우리나라는 가이드라인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곳이 많다. 정석희 대중문화평론가는 “일베 문제뿐 아니라 맞춤법 문제, 언어파괴 등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제작 윤리들이 유야무야해졌다”며 “시청자 정서를 고려해 사전에 위험 요소를 걸러낼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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