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연주홀의 주인공은 연주자다. 관객들의 귀는 연주자들이 내는 악기 소리 한음 한음을 향해 열려 있고, 관객들의 눈은 무대에 집중된다.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완벽한 연주에는 스태프들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음향, 조명, 하우스 등으로 나뉜 공연 스태프 업무는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각 분야에 대한 조율도 필수다. 무대 뒤에서 스태프의 의견을 조정하고 업무 화음을 맞추는 이가 스테이지 매니저(SM)라고 불리는 무대감독이다.
공연장 설계기준에 따라 가장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오케스트라 단원들 사이의 간격을 일러주는 일, 공연장에서 보유하고 있는 악기를 최상의 컨디션으로 관리하는 일, 연주회의 중간 쉬는 시간에 자리를 정리하는 일, 공연이 끝난 뒤 ‘커튼콜’에 연주자들이 무대로 다시 걸어나갈 타이밍을 잡아주는 일까지 무대감독의 역할은 끝이 없다. 무대는 연주자들이 올라 서는 공간 만을 의미하지 않는 셈이다. 연주자 대기실과 악기 보관 방까지 책임지는 클래식홀 무대감독의 이야기를 강일묵(33) 롯데콘서트홀 무대감독을 통해 들어봤다. 강 무대감독은 뮤지컬 전용공연장인 신도림디큐브아트센터에서 5년간 무대감독으로 일했고, 지난해부터 롯데콘서트홀에서 무대감독을 맡고 있다.
“감독보다는 관리자죠”
무대감독의 자리는 SM데스크라고 불리는 무대 옆 작은 공간이다. 관객들 시야를 벗어나 있고, 무대감독은 모니터를 통해서만 공연을 볼 수 있다. 무대감독은 이 자리에서 공연을 지켜보며 “마이크 켜주세요” “조명 꺼주세요” “멘트 내보내주세요” 등 공연에 필요한 요소들을 감독한다. 클래식 공연은 한 공연 당 무대감독 2명과 조명감독 1명 음향감독 1명이 투입된다.
하지만 강일묵 무대감독은 “감독하는 일보다는 조율하는 일이 우리 역할”이라고 말한다. 감독이라는 호칭이 붙어있긴 하지만 무대감독이 ‘디렉터’가 아닌 ‘매니저’로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교통정리를 한다고 생각하면 돼요. 각 파트의 일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게 하는 소통창구를 맡는 거죠. 리허설 전까지 조명과 음향 등 파트 별로 업무가 원활히 진행되도록 스케줄을 조율하고, 공연 당일 변수가 생기지 않을지 체크해 두는 역할이 가장 기본이에요.”
무대장치 등을 점검하는 것도 무대감독의 역할이다. 공연 최소 2주 전 공연 단체와 스태프들이 만나 기술 회의를 시작한다. 오케스트라 편성인지, 독주회인지, 실내악 연주인지, 합창이 들어가는지에 따라 세부사항이 달라진다. 각 파트의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서 무대감독은 조명과 음향에 대하 기본적인 지식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각 감독들의 영역을 침범해선 안 되기 때문에 직접적인 제안을 하지는 않아요. 다만 모두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무대감독이 조율을 합니다.”
무대 위 연주자의 위치에 따라 소리가 객석으로 어떻게 전달되는지 가장 잘 아는 것도 무대감독이다. 롯데콘서트홀은 빈야드(객석이 무대를 둘러싸는 구조) 형태로 설계된 콘서트홀이다. 그 특성이 맞게 오케스트라 연주자들 배치를 돕는다. “보통 지휘자가 악단 특성과 다른 공연장에서 했던 공연을 기준으로 배치도를 가져와요. 그럴 때 우리 음향설계기준에 따라 가장 좋은 소리를 내는 간격 등을 이야기해 줍니다. 저희는 단 높이로는 25㎝를 최적으로 보거든요. 그런 조율도 함께 해 나가는 거죠.”
“한 번 더 갑니다” 커튼콜의 비밀
클래식 공연에서는 1부와 2부 곡에 따라 악기 편성이 바뀌는 경우도 종종 있다.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면 중간에 피아노가 무대로 들어갔다 나가야 하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자리가 바뀌기도 한다. 이 때 무대감독은 관객들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피아노를 무대 밖으로 밀고 나가는 이, 바이올린 연주자들의 의자를 무대 위로 추가로 들고 오는 사람이 무대감독이다. 강 감독은 뮤지컬 전용 공연장에서 일을 했을 땐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었지만, 지금은 검은색 정장을 갖춰 입는다. “클래식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에 대한 예우”다. “무대 전환도 관객들에게 보여지는 공연의 일부니까요. 의자 하나를 나르더라도 어떤 면을 보이게 들고 나갈 것인지를 신경 쓰죠. ‘정확하고 깔끔하고 빠르게’ 옮겨야 해요.”
숨겨져 있는 무대감독의 역할 중 하나는 연주가 끝난 뒤 커튼콜 때 발휘된다. 연주자와 지휘자는 곡을 마치면 무대 뒤로 퇴장했다가 관객들의 박수가 이어지면 다시 무대로 돌아온다. 이 때 인사를 하고, 앙코르곡을 연주하기도 하는데 그 타이밍을 잡아 주는 역할이다. 인기 있는 연주자의 경우 커튼콜이 10회를 넘어가기도 한다. “박수소리를 들으면 느낌이 와요. ‘이번이 마지막’ 혹은 ‘한 번 더’라고 음향과 조명 쪽에 전달하는 거죠. 그런데 연주자가 다시 나가려고 하는데 박수소리가 끊기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박수가 잦아지기 전에 나가게끔 연주자의 등을 떠밀 때도 있어요(웃음).”
앙코르 연주를 결정하는 건 온전히 연주자의 몫이다. 사전에 무대감독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 두는 경우도 있지만, 오케스트라 협연자일 경우엔 깜짝 앙코르 연주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 강 감독은 급하게 음향과 조명 쪽에 메시지를 전달한다. “앙코르 들어갑니다.”
강 감독이 무대감독 일을 하며 당황했던 경험도 커튼콜 때였다. 연주자와 지휘자의 사이가 좋지 않아 커튼콜 인사를 거부했던 일이다. “솔리스트가 연주하면서 마음이 상했는지 자신의 연주가 끝나자마자 대기실을 떠나버린 거예요. 공연 후 지휘자는 솔리스트가 있어야만 커튼콜 인사를 하겠다고 하고, 가 버린 솔리스트를 불러올 수도 없고 그 때 진땀을 뺐어요.”
그렇다면 무대감독이 가장 힘들 때는 까다로운 연주자를 만났을 때일까? 강 감독은 합창을 꼽았다. “일단 인원 수가 많고, 참여하는 단체가 많아요. 오케스트라는 100명이 들어와도 지휘자 한 명이 통제할 수 있어요. 합창단은 여러 단체가 모이는 경우가 많아요. 무대에서 안전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완벽하게 모두를 아울러야 하니 힘든 것 같아요.”
“무대라는 그림을 위한 다른 공간도 모두 무대”
공연제작사의 무대감독과 공연장의 무대감독은 차이가 있다. 공연장의 무대감독은 공연장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클래식 공연장 관리에는 악기라는 중요한 요소가 포함 돼 있다. 대개 연주자들은 자신의 악기를 직접 들고 오지만, 부피가 큰 피아노와 타악기는 공연장에서 보유하고 있는 악기를 사용한다. 롯데콘서트홀은 파이프오르간을 보유하고 있다. “파이프오르간 하나 때문에 공연장 온도는 21~23도를 항상 유지해야 해요. 습도도 유지해 줘야 하고요. 파이프오르간과 더불어 중요한 건 어느 악기보다도 자주 사용되는 피아노죠. 피아노가 연주에 적합한 상태에 놓이도록 온도와 습도를 잘 유지해 줘야 해요.” 롯데콘서트홀은 연주용 스타인웨이사의 피아노 4대를 보유하고 있다. 연습실과 지휘자대기실까지 총 6대의 악기가 관리 대상이다. 전담조율사가 악기를 관리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상태 유지는 무대감독이 맡는다. 피아노를 직접 고칠 수는 없지만, 피아노의 어떤 기능이 안 될 때 어떤 점이 문제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야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강 감독은 학창시절부터 방송반 활동을 하며 방송기술과 오디오 음향 쪽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대전문화예술의전당에서 진행했던 교육프로그램 ‘공연예술연수생제도’를 통해 무대감독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연수생일 때 공연장을 처음 접해 봤는데, 무대라는 광활한 공간이 압도적으로 확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공연장에서 일을 하기로 결심하게 됐어요.” 무대감독이 되기 위한 자격요건은 없지만, 현장을 느껴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대감독도 점차 전문화되며 요즘은 대학에도 무대기술학과 등이 신설돼 미리 현장을 경험해 볼 기회도 늘고 있다.
강 감독은 “무대가 앞에서 보이는 한 면으로 된 게 아니라 관객이 보는 그 그림을 만들기 위해 준비를 하는 다른 면들도 모두 무대”라고 말했다. 그의 꿈은 “관객들이 좋아하는 모습만 보고 싶다”는 것. “관객이 만족해야만 잘 만들어진 공연이니까요. 공연에 대한 불만이 하나도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무대감독이 되고 싶어요.”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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