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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완전한 비핵화” 의지 선언에도
美 요구 CVID는 일절 언급 안해
과거에도 사찰ㆍ검증 단계前 판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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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두려운 美 “사찰부터” 고삐
“北 이미 다 얻어” 회의론도 팽배
트럼프 특유의 불확실성도 변수
현대사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외교무대 중 하나로 기록될 6ㆍ12 북미 정상회담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북한 비핵화를 가로막는 함정들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특히 미국이 요구하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와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동시ㆍ단계적 비핵화 간 간극이 크다는 점이 가장 난제다.
일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 달성 의지를 강조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김 위원장은 4월 22일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기존의 핵-경제개발 병진노선 대신 경제개발에 집중하겠다는 새로운 전략 노선을 채택했으며, 4ㆍ27 판문점선언에서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선언했다. 이를 증명하려는 듯 지난달 풍계리 핵실험장 주요 갱도를 폭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미국이 요구하는 CVID는 입에 올리지 않고 있어 실제 담판 과정에서는 비핵화 범위, 방식, 속도와 시기 등 타결해야 할 쟁점이 수두룩하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도 협상 판 자체를 깨지 않기 위해 CVID의 개념 자체는 수용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문제는 폐기해야 할 북한 핵무기와 핵물질 규모를 확정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못할 경우 CVID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북미 간 양자합의든, 6자회담 합의든 과거 북핵 합의는 모두 사찰ㆍ검증 단계에 이르기도 전에 파기됐다. 뒤집어 보면 핵개발을 시작한 북한에 대해 국제사회가 제대로 된 사찰을 벌여본 적이 한번도 없는 셈이다. 비핵화 여정이 험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찰ㆍ검증해야 할 핵무기 규모에 대한 대략적 공감대도 형성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은 불과 1~2년 사이 3차례의 핵실험과 수십 번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감행했다. 10~20여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것이란 기존의 관측은 핵개발 집중 기간을 거치며 최대 60기로 늘어난 상태다. 하지만 아직은 첩보단계에 불과하다. 핵물질의 경우도 연간 최대 40kg의 고농축우라늄(HEU)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구체적 근거는 없는 실정이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 낸 주역인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최근 인터뷰에서 “북한은 넓고 핵무기는 작다”고 한 것도 사찰 대상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현실을 꿰뚫은 지적이다. 이처럼 사찰 범위를 두고 미국이 내민 요구안과 북한이 답변한 내용증명서 간 차이는 예상보다 클 수 있다. 또 사찰 범위에 대략적 합의를 보더라도 구체적 사찰 방식, 시기와 속도는 또 다른 힘겨루기가 필요한 쟁점 사항이다. 싱가포르에서 양국 정상 간 담판 이후에도 북미 간 협상은 계속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국 조야에 팽배해 있는 비핵화 회의론도 넘어서야 할 과제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최근 뉴욕타임스에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이 과거에 했던 것이고, ‘빅뱅’처럼 획기적인 것도 아니란 점을 이해하고 있는지 여부”라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정상 간 합의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지만, 북한의 합의 파기에 따른 실패의 역사는 되풀이될 공산이 크다는 뜻이다.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내며 대표적인 대북 유화론자로 꼽혔던 크리스토퍼 힐 전 동아태 차관보도 최근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의문의 여지 없이 이것은 스피드 데이트(speed dating·속성 데이트)다. 북한은 이미 모든 것을 얻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불확실성도 이번 비핵화 여정의 또 다른 함정이다. CVID라는 당초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당장 가시적 성과로 회담 결론을 유도해 과대 포장하려 할 것이란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에) ICBM이나 핵탄두 폐기와 같은 상징적 비핵화 조치 하나 정도가 들어가고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기본 라인에 대한 합의만 들어갈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미국에 대한 직접 위협을 해소했다는 점에서 과거 어떤 합의보다 뛰어난 합의라고 이야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부 핵 폐기 조치를 큰 성과로 포장하고, 당초 목표였던 CVID는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뜻이다. 김형석 전 통일부 차관은 “완벽한 회담이라는 것은 없다”며 “북미 정상 간 합의 이후 북한이 다른 길로 빠져 나가지 않고 성실하게 비핵화 조치를 이어갈 수 있도록 대북 체제 보장ㆍ경제 지원 등을 비핵화 과정에 촘촘하게 배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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