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정전협정 이후 한반도는 이렇다 할 평화체제로의 전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속절없이 65년을 흘려 보내야 했다. 제네바 정치회담(1954년)과 남북기본합의서(1992년), 10ㆍ4 남북공동선언(2007년) 등의 노력이 있었지만 강대국 간 입장 차와 남북관계 부침으로 좌절되며 오히려 정전체제가 굳어지는 결과로 돌아왔다.
정전체제란 1953년 7월 27일 국제연합군과 중국, 북한 간 체결된 정전협정에 따라 전쟁을 임의적으로 멈춘 상태를 뜻한다. 정전체제를 끝내고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해선 정전협정을 대체할 당사국 간 또 다른 조약으로 담보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평화협정이다. 6ㆍ12 북미 정상회담 성과물로 거론되는 종전선언이나 북미 불가침 합의 등은 모두 평화협정이라는 최종 목표 달성을 위한 정치적 약속에 해당한다.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최초의 회담은 정전협정 체결 9개월 뒤인 1954년 4월 26일 스위스에서 열린 제네바 정치회의다. 하지만 결렬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집권한 남한은 미국의 지지 속에서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추진했던 반면 북중은 남북한 동시 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맞섰기 때문이다.
이후 평화체제 논의를 꺼내든 것은 북한이었다. 1974년 3월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먼저 제안한 것이다. 미국은 그러나 4자(남북미중)회담을 역제안하며 불발됐다. 1984년 1월 북한은 다시 남북미 3자회담과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했으나 이 역시 당사국 간 입장 차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냉전 해체 흐름을 타고 남북은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정전상태의 평화상태로의 전환에 합의했으나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분위기는 악화됐다. 다시 한미의 제안에 따라 1997년 남북미중 4자가 다시 회담을 시작해 1998년 평화체제 구축 논의를 위한 분과위 설치 합의를 이뤘다. 1999년까지 6차례 회담이 열렸지만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에 막히며 또다시 결렬되고 말았다.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이어진 북한의 국지도발과 핵개발로 평화체제 논의는 좀처럼 힘을 받지 못했다.
4ㆍ27 판문점선언을 이끌어낸 세 번째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리는 올해는 평화체제로 갈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로 여겨진다. 사상 초유의 북미 정상 간 협상 판에서도 성과가 없을 경우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각국의 회의감은 그만큼 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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