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혁신성장을 가속화하겠다며 추진하고 있는 ‘혁신성장본부’가 사실상 박근혜 정부의 무역투자진흥회의(이하 무투) 모델을 답습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재부는 혁신성장본부를 통해 현장 사업 점검과 규제 혁파, 투자 활성화 등 혁신성장과 관련한 가시적 성과를 내겠다는 각오지만 본부 구성이나 추진 방식, 역할 등이 모두 무투 ‘현장대기프로젝트’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과거처럼 정부가 주도하는 혁신은 더 이상 혁신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12일 기재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안으로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혁신성장본부(가칭)’을 설립한다. 혁신성장본부는 본부 국장급이 팀장 역할을 하는 선도사업 1팀, 선도사업 2팀, 규제혁신ㆍ기업투자팀, 혁신창업팀 등 4개 태스크포스(TF)로 꾸려진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혁신성장에 기재부 조직 전체의 가용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라”고 지시한 상태다. 이에 따라 각 실국 핵심인력을 선발해 최소 20명 이상의 전담반이 꾸려질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 관계자는 “정부가 직접 현장에서 기업, 지자체의 투자 애로 사항 파악해 규제를 완화하고 투자, 고용 등 실질 성과를 이끌어 내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재부 안팎에선 이는 박근혜 정부의 무투 모델을 복원하는 것이라는 말이 무성하다. 무투는 지난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수출진흥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직접 주재했던 범정부 경제회의체를 본 떠 만든 회의다. 창조경제를 뒷받침 하기 위해 지역 여론이나 규제로 발목 잡힌 지자체 및 기업 프로젝트의 애로 사항을 원포인트로 해결해 주는 ‘현장대기프로젝트’가 무투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지난해 2월 11차 회의에서 추진됐던 케이블카 규제 완화, 수제 맥주 시중 유통 허용 등이 대표적이다.
무투는 이 회의를 마지막으로 정권 교체와 함께 사라졌다. 그런데 혁신성장본부가 꾸려지면 사실상 무투의 역할을 승계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부처 장관들이 참석해 주요 정책별로 혁신성장을 논의하던 경제관계장관회의도 앞으로는 무투처럼 민간이 참여하는 ‘혁신성장관계장관회의’로 확대ㆍ개편된다.
#“성과내기 집착하면 큰 흐름 놓쳐” 실패 땐 김동연 부총리 입지 불안그러나 급조된 혁신성장본부는 결국 보여주기식 대책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게 문제다. 박근혜 정부도 2013~2016년 현장대기프로젝트를 통해 62조원 규모(42건)의 사업을 발굴해 냈지만 실제 준공이 완료돼 투자ㆍ고용 창출에 기여한 프로젝트는 3조8,000억원(5건) 규모에 그쳤다. 프로젝트를 발굴해 발표하는 데만 치중하고 정책 집행과 이행은 제대로 챙기지 않은 결과다. K-컬처밸리 등 특정 사업이 최순실 게이트와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프로젝트 선정에 비선 실세가 개입했다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정부가 지나치게 성과 내기에만 매몰되면 전체적인 규제 제도 변화 등 큰 흐름을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혁신성장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온 기재부나 김 부총리의 입지는 더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혁신성장은 일자리 창출, 소득주도성장과도 연계돼 있는 만큼 혁신성장에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관료 중심으로 추진해 성과가 없으면 민간 전문가를 특보로 기용하는 등 다른 수를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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