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 Too) 운동이 거세게 일어날 당시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된 법안 대다수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는 조속한 국회 통과를 요구하고 나섰는데,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을 때만 반짝 관심을 보이는 척 하다가 금세 발을 빼는 국회의원들의 행태에 우회적으로 일침을 가한 것이다.
여성가족부는 12일 성희롱ㆍ성폭력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 예방교육 강화 등을 위해 진행 중인 사안 현황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 “지침 개정 및 행정적 조치는 차질 없이 추진 중이 반면 법률개정안은 대부분 국회 계류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 차원에서 추진 중인 미투 대책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는 반면, 국회가 키를 쥐고 있는 법률 개정은 진척이 없다는 것이다.
여가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이후 미투와 관련해 개정을 추진 중인 12개 법률 가운데 10개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정부입법으로 발의된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를 성인이 될 때까지 연장하는 민법 개정안 1건은 입법 예고됐고, 특히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10개 법안은 모두 의원입법 형태로 추진된 법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1건은 아직 법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주된 법안들은 권력형 성범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높이는 것들이다. 지난 1월 서지현 검사의 미투 고발 이후 업무상 위계ㆍ위력 간음죄에 대해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의원들이 앞다퉈 법정형을 높이는 형법,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무부도 관련 법 개정 뜻을 밝혔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사업주의 성희롱이나 징계 미조치에 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남녀고용평등법이나 노동위원회를 통해 성희롱 구제절차를 신설하는 노동위원회법 개정안도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반면 국회 동의를 얻지 않아도 되는 행정적 조치는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게 여가부측 설명이다. 대표적으로 피해자가 성폭력을 고발해도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지 않도록 일선 검찰청에 ‘위법성 조각사유’를 적극 적용하도록 한 지침이 내려졌고, 경찰이 피해자 신원보호를 위해 ‘가명조서’를 활용하기로 하면서 가명조서 사용률도 올해 1,2월 24.2%에 비해 3~5월에는 47.8%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이날 자료는 미투 열풍이 뜨거울 때는 너도나도 적극적으로 법안을 발의하는 등 생색을 내다가 사회적 관심이 다소 줄어들자 발을 빼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국회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윤세진 범정부 성희롱ㆍ성폭력 근절 추진점검단 총괄팀장은 “대책의 이행력 확보를 위해서는 법률 개정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며 “국회 통과가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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