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족으로 꾸미는 게 왜 문제냐며 그것까지 코르셋이냐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사실은 그 ‘하고 싶다’는 욕구와 생각 자체가 코르셋에서 기인한 건 아닌지 생각해보셨으면 해요. 그 만족의 기준도 결국 사회가 만든 미의 기준 아닌가요. 빨간 입술, 큰 눈, 마른 몸, 직각 어깨, 하얀 피부 등이요. 이 기준에 끼워 맞춰 얻은 게 정말 순수한 자기만족일까요.” (23세 대학생 A씨)
“아직은 꾸미지 않는 사람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현실에서 누군가에게 ‘너 그렇게 꾸미는 것, 그거 코르셋이야’라고 말하는 건 좀 권위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탈코르셋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보고 누군가 ‘나도 꾸미지 않아도 괜찮구나’하고 원치 않을 땐 안 꾸밀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게 이 운동의 의의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행복할 자유를 누릴 수 없을까요.“ (24세 전유나씨)
탈코르셋 운동이 확산되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화장, 긴 생머리 등을 코르셋으로 규정하는 시선 자체가 또 하나의 속박이 될 수 있다는 갑론을박 오가고 있다. 이른바 이기적 화장, 이기적 꾸밈은 존재하지 않느냐는 근본적 질문이다.
‘자기만족에서 비롯된 꾸밈’은 없다는 측 주장은 “이렇게까지 많은 비용과 노력,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미용이 오로지 순수한 욕망의 발로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게 골자다. 반대 측에서는 “인간의 욕망은 원래 타인의 욕망이기도 한데, 누군가에게 아름답게 보이고 싶다는 욕구 그 자체와 모든 노력을 왜곡된 것으로 규정하는 것도 또 하나의 억압”이라고 맞선다.
이 논쟁은 지난해 배우 엠마 왓슨이 놓였던 딜레마와도 닮아있다. 그가 영화 ‘미녀와 야수’의 개봉을 앞두고 한 잡지사에서 화보사진을 촬영하면서 가슴을 노출하자, 이 노출이 그간 옹호해온 페미니즘의 정신과 모순된다는 지적이 잇따랐던 것이다. 당시 왓슨은 이에 대해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선택권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지, 다른 여성들을 때리기 위한 몽둥이가 아니다”라며 “자유, 해방, 평등에 관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많은 반박과 옹호가 오갔다.
탈코르셋 운동을 두고 이어지는 논박에 대해서도 이분법적 접근을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계간 홀로’ 이진송 발행인은 “화장에 대한 비난, 이른바 메이크업 쉐이밍(Makeup shaming)도 과거 여성혐오를 구성하는 한 소재였던 만큼 이분법적 접근은 위험하다”며 “하지 않음의 실천도 유의미하지만 서로를 나누거나 비난하지 않는 가운데 다양한 노력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양측의 의견이 모두 ‘보편성에 대한 도전’이라는 같은 흐름 위에 놓여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탈코르셋 운동은 다른 화장하는 여성을 비난하지 않고 있으며, 또한 그래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개개인이 누가 하고 누가 안 하고를 떠나, 그간 추구해왔던 외양이 정말 내가 원한 것이었나, 혹은 다른 판단의 최종 심급자를 염두에 둔 것이었나를 근본적으로 돌아보는 계기가 마련되고 있다는 것에서 더 큰 의의를 발견했으면 한다”며 “양측의 의견 모두 보편적이고 당연했던, 의문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던 꾸밈노동에 대한 회의와 질문 그 자체”라고 분석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한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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