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육성은 민간에 맡기고, 국가 연구개발(R&D)은 기업이 하지 않는 기초ㆍ공공연구 위주로 이뤄져야 한다.”
염한웅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은 14일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오찬 간담회를 갖고 “환경부와 보건복지부만 해도 R&D 목표가 환경ㆍ보건산업 육성으로 돼 있다”며 “과거 개발시대 때 정부 R&D 목표를 그대로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포항지진이 발발했을 때 그 원인이 무엇인지 정부출연연구소(출연연) 등 정부 연구기관에서 명쾌한 답변조차 내놓지 못 했다”고 꼬집었다. “정부 R&D는 치매ㆍ미세먼지ㆍ수질 등 돈이 되진 않지만 국민들에겐 매우 중요한 문제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염 부의장은 현재의 출연연 평가방식에 대해서도 “매우 잘못됐다”고 말했다. 출연연마다 성격이 다른데 논문 발표 건수, 특허 출원 건수, 기술이전료 등 동일한 잣대로 해당 기관의 연구 성과를 평가하는 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평가를 잘 받기 위해 출연연 연구원들이 ‘외도’를 하게 되고, 이는 또 다시 출연연의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원인이 된다. 그는 “현재 기관장 임기인 3년 단위로 실시하는 평가를 5년으로 늘리고 기관별 특성을 반영한 평가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며 “기초연구기관은 논문, 기술이전이 주 목적인 기관은 개발한 기술의 상품화 정도로 평가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정부가 폐지를 검토 중인 연구과제중심제도(PBS)에 대해선 “출연연 경쟁력 약화의 핵심 본질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PBS는 출연연 연구원들이 외부 연구 과제를 수탁해 인건비를 충당하도록 한 제도로 1995년 도입됐다. 염 부의장은 “1명당 평균 3개의 외부 연구 과제를 수행하는 연구원이 본래 자신이 하고자 하는 연구를 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라면서도 “미국의 출연연은 100% PBS로 운영되는데도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발주하는 외부 과제 수를 줄이는 대신, 과제 규모를 키우고 장기 연구로 가져가면 연구원들이 과제 따러 다닐 필요 없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염 부의장은 “창조경제 등 정부의 정책방향에 따라 출연연의 연구방향이 크게 바뀌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부 R&D 방향을 설정해 출연연이 더 이상 정부 기조에 휘둘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의장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국가 과학기술 정책의 기본방향과 주요의제에 대한 정책자문을 수행한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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