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에 사는 독거 노인 차종진(72)씨는 국민연금을 포함한 월 소득이 70만원 남짓으로 소득 하위 70% 노인이 받는 기초연금의 수급 대상자다. 기초연금은 1인당 월 21만원가량을 주게 되어 있지만 차씨 통장에 실제 찍히는 금액은 12만6,880원에 그친다. 저소득층인 차씨가 8만원 넘게 기초연금이 깎이는 이유는 그가 받는 국민연금 때문이다. 차씨의 월 국민연금은 48만8,440원인데, 정부는 국민연금 수급액이 월 31만4,940원을 넘는 사람은 최대 50%까지 기초연금을 감액해 지급한다. 만약 차씨가 받는 국민연금액이 지금보다 17만원가량 적고, 대신 다른 소득이 17만원 많았다면 기초연금을 전액 다 받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차씨는 “젊은 시절 성실히 일해 꼬박꼬박 국민연금을 부은 것이 이런 불이익으로 돌아올지는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기초연금 불이익을 주는 감액 제도에 대한 문제 지적이 잇따르자 정부가 폐지를 적극 검토하고 나섰다. 그러나 감액 제도가 국민연금 미가입자 차별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장치라는 반론이 여전한데다 폐지 시 필요한 정부 재정이 연간 3,000억~4,000억원으로 적지 않아 막판 공방이 뜨겁다.
2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간 연계 폐지 방안에 대한 의견을 정해 오는 8월까지 복지부에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다. 위원회 의견은 정부안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폐지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초연금 감액 제도는 국민연금이 일정액을 넘는 수급자에게는 기초연금을 최대 50% 감액하는 제도다. 국민연금 급여액이 기초연금 기준급여액의 1.5배를 넘는 사람이 감액 대상이다. 올해 기초연금 기준급여액이 월 20만9,960원이니 국민연금을 월 31만4,940원 넘게 받는 사람부터 기초연금이 차등 감액된다.
이 제도로 기초연금이 삭감되는 노인은 약 35만5,000명으로 전체 기초연금 수급자 494만3,000명의 7.2% 수준. 하지만 국민연금 수급자 수와 평균 가입 기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 감액 대상자 수는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감액 제도 폐지 여부 결정이 임박하면서 공방도 다시 뜨겁다. 폐지론자들은 감액 제도가 국민연금에 장기간 가입할 유인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한다. 김원섭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영업자나 비정규직 등이 기초연금 감액을 우려해 국민연금 가입을 회피하는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학계 일각에서는 여전히 이중 혜택을 막기 위한 애초 도입 취지에 맞게 감액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국민연금 미가입자 등 사각지대의 해소를 위해 기초연금을 도입했고, 따라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동시에 받는 사람은 기초연금 일부 감액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입자 본인이 낸 돈의 1.6배를 연금으로 돌려받는 지금과 같은 수익비에서 연계 감액을 폐지하면 미래 세대의 도움을 저소득층을 제외한 국민연금 가입자에게만 몰아주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지적했다.
재정 부담도 만만치 않다. 복지부 추산에 따르면 감액 제도 폐지에 따라 추가로 필요한 재정은 2019년 기준으로 연간 2,900억원(지방비 포함)이며, 기초연금이 30만원으로 인상되는 2021년에는 연간 3,7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국민연금 성실 가입자에게 되레 불이익을 주는 이런 감액 제도가 폐지되지 않으면 국민연금 개혁은 요원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좀더 많이 실린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관련 청원이 끊임없이 게시되고 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제도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보험료율 인상 등 국민연금 개혁의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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